57p
어둡고 암울한 서사가 계속되어 읽기 힘들었다. 그저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당하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교장과 선생들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으나 역시 구병모 작가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섬, 그 섬 안의 학교는 멀리서 봤을 때는 아름다우면서 멋진 풍경에 자리한 학교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살아온 교장은 자신만의 세상인 학교를 만든다. 그 안에서 교장은 아이들을 외부와의 접촉을 전적으로 차단하여 교육(말이 좋아 교육이지 학대)시키고 통제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약 20년 동안 운영한다. 이런 내용을 통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목에 나타난 것과 같이 피그말리온이다. 자신의 취향만이 그대로 반영된 조각상을 만든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 즉 피그말리온은 이 이야기 속의 교장,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인 갈라테이아는 이 학교의 학생들로 보여진다. 갈라테이아는 오로지 피그말리온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모습 그대로가 투영되어 만들어진 피사체이다.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타인에게 갖다 붙이는 행위에 성공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고 나를 투사한, 내 뜻을 반영한 내 소유의 로봇이 된다.˝그리고는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의 욕망대로 살고 있느냐고.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죽은 아들이 보낸 로봇으로 주인공 명정은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어두고 금방 현실에 적응하여 살 수 있게 된다. 겉모습이 인간을 닮은 로봇은 명정으로부터 둘째아이가 생기면 부르고 싶어했던 은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은결은 명정과 동네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점 더 인간친화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인간친화적이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그 상황에 알맞게 제공하는 정도..?) 은결은 미완성 제품으로 오래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정, 준교, 그리고 준교의 손자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 머물러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친한 사람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힘든 비밀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찌보면 인간보다도 로봇인 은결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상황들도 많이 서술된다. 이 책에는 여러 세대가 공감할만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그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이 작가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은결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가미에 이어 다시 한 번 가슴 따뜻해지는 동화 한 편이자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알약같은 책을 읽게 되어 행복해진다.
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