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위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역사에서 아무개들의 역사는 놓치기 쉬워요.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의병을 볼 때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나도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 위치에있을 수도 있겠구나.‘ 솔직히 광개토태왕, 이순신, 김구 같은 위인에게 나를 빗대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그 주변 인물, 열심히 살아가지만 이름은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일생을 볼때면 가슴이 더 찡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감동이물밀듯 밀려온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 시대의 아무개일 테니까요. - P37
역사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많은 사람이 즐기는 건 좋은 현상이에요. 특히 역사가 지루하다는 분들은 대중매체를 적극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그때는 관심이 가는 인물의 평전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평전에는 한 사람의 인생 전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좀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아요. 평전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인물의 생애에 주목한 다큐멘터리도 좋고요. 어떤 식으로든 생애를 쫓다 보면 주인공의 인생에 나의 인생이 겹치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게 되거든요. - P38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됩니다. 가슴 뛰는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저는 여러분이 역사를 그렇게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 P3940
그런데 그들이 바라던 시대가 찾아왔어요. 신분제 폐지라니말이 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먼 미래를 보며 나아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도전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그 당연한 것을 누리고 사는 건지 모릅니다. 역사적 사건을 볼 때 기본적으로 원인, 전개, 결과 그리고 의의를 다룹니다. 갑신정변의 엘리트 청년, 동학농민운동의 농민 모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 는 실패했어요. 그렇다고 이들의 운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의 주장은 1차갑오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됩니다. 조정 역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까닭이죠.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신분제와 함께 반상의 구별도 사라집니다. 비록 당대에는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 P48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희망이라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와요. 말하자면 역사는 실체가 있는 희망입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조금 더 살아보자고, 버터보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조금만 더 멀리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두렵겠지만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세상도 변하는데 나의 인생이라고 늘 지금과 같을까요? 힘든 세상에서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의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인생이라는 항로에서 방향키를 놓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노력도 역사의 수레바퀴와 맞물려 순풍이 불어오듯 결살을 맺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 P50
앞에서 말한 대통령들 모두 적당한 때에 물러났으면 명예와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과욕을 부리다가 내려을 때를 놓쳐버렸죠.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반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요즘 제가 품은 소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전성기는 이미 지난 것 같아요. 이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봅니다. 저는 더 올라가는 것보다 잘 내려가고 싶습니다. - P59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말, 의견이 누군가의 나쁜 선택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 편인데 공정한 평가뿐만 아니라 제 말이 어떻게 해석되고 사용될 수 있을지 점검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의 강의를 듣고 제 의견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요. - P60
크고 작은 곳에서 이 사회를 이끄는 사람일수록 역사 의식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더 많은 사건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조지 워싱턴의 결정이 미국 정치사에 미친 영향, 구진천의 결정이 신라인들의 생사에 미친 영향을 떠올려보자고요..
결국 한 사람의 선택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닥친 상황과 욕망에 자꾸 눈이 멀어요. 그래서 과거의 무수한 사례를 까먹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기십상입니다. 그 잘못 하나 때문에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공이 가 무너지기도 해요. 내가 내뱉는 말과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살쳐볼 수 있다면 선택은 한결 쉬워질 겁니다. - P65
자신의 생가에 걸어 놓은 현판이죠. 여유당‘이라고 쓰인 현판인데, 얼핏 들으면 ‘이제 좀 여유를 갖고 편하게 살겠다는 뜻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여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유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 P71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가문이 물리한 상황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금방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없는 폐족일지라도선비의 기상을 유지하는 길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폐족끼리 무리를 짓지 말 것, 과일과 채소를 키우고 뽕나무를 심어 가난에서 벗어날 것,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벼슬하는 사람처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살 것…. 그중에서도 핵심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해도 책은 읽을 수 있으니까요.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이 되려면 오직 독서 한 가지 일뿐이다"라고 했지요. 칭족은 대대로 절개와 의리를 숭상해온 집안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정약용은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의 재판 기록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클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 P75
이 고난이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조급한 마음을 약간은 덜어낼 수 있어요..정약용의 고민과 제 고민의 내용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핵심은 비슷할 거예요. 왜 이렇게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그 답은 정약용의 삶에 있습니다. 정약용은 1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18년을 보낸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때로는 비참하고 암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족이 되었음을 한탄하거나 힘든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그의 여생은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어찌면 삶의 마지막 투쟁이었을 겁니다. 역사를 알았기에 고난을버티며 투쟁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P78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 P79
저는 신라의 삼국통일. 그 발착한 상상이 황룡사 9층 목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가슴에 품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어요. 그렇게 꿈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것이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에 혁신도 가능했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더라면, 또는 강국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면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비전을 세웠으면 그 비전을 실행할 인재가 필요하겠죠? 신라의 삼국통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두 사람이 있어요. 김춘추와 김유신입니다. 이들은 원래 신라 조정의 비주류였습니다. 아웃사이더죠. - P88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부딪힌다면 642년의 신라를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결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가장 먼저 비전을 세워야겠죠?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아니라 최종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 그 목표를 정해보는 겁니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듯이 말이죠. 어쩌면 지금이 혁신의 적기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고, 새로운 첫걸음을 떼야 하는 때가 온 것이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인생 드라마에 최고의 반전이 되어줄것입니다. - P92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P104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가 조폐국에서 일할 때 금화나 은화에 문양을 새기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알려져있고, 인쇄에 필요한 종이는 이미 중국에서 발명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의 제지 기술이 세계 각지에 전해지면서 유럽에서도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보면 새롭게 발명된 기술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기술이었죠. 금속활자와 프레스기, 종이를 응용한 것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입니다. 알고 보면 창조가 아니라 조합이에요. 하지만, 달리 보면 조합을 통한 창조이기도 합니다. 창조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물건이나 기술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는 것도 창조예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하진 못했지만, 그의 인쇄기는 인쇄 역사뿐 아니라중세 유럽의 역사마저 바꿨습니다. 그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어요. - P109
최초의 기술이나 최고의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아이폰, 한글의 공통점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처럼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행위는 결국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어요. 아이폰 또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기술로 후대에도 오랫동안 회자될것입니다. 한글은 민본의 글에서 민주의 글로 바뀌었습니다. 한글 덕분에 한결 쉽고 자유롭게 내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 P116
원종의 업적은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훗날 원나라가 독립성을 침해하고 속국으로 삼으려 할 때마다 고려는 매번 세조구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쿠빌라이가 이렇게 약속했어‘ 하고 주장했던 거죠. 그냥 황제도 아니고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의 유지였기 때문에 원나라 황제들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가끔 항복을 앞둔 원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어요. ‘이제 고려는 끝났구나‘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면 정말 고려는 끝났을지도 몰라요. 몽골제국에 편입되어 마치 섬과 같은 끄트머리 변방 땅으로 남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원종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지켜야 하는 것, 얻어야 할 것을 빠르게 계산했습니다. 그리고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해 그처럼 대담한 제안을 던졌지요. 그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고려는 계속해서 자치 국가로 남을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원종의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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