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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교 1학년 때 필수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는 하필 강의 주제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선택했고, 당시 내가 칸트에 대해 아는 거라곤(지금이라고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그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였다. 당연히 수업을 따라가는 데 실패했고, 칸트는 내게 '시간을 잘 지키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밖에 되지 못 했다. 그 수업의 후유증으로 철학서를 한동안 보지 않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그 가운데 '철학'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철학에는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첫째 이해하기 어렵고, 둘째로 안다고 해서 현실에서 크게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면 “그거 알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인 것이다.
‘철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는 철학에 관한 두 가지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목에서부터 담았다.
먼저 ‘철학은 무기가 된다!’는 확신, 그리고 ‘어떻게’ 무기가 되는지 알려줄 수 있다' 는 확신. 실로 놀라운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신감은 과연 '근거 있는 자신감' 인가? 책의 다음 구절로 대신할 수 있겠다.
이 때 ‘나’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개인은, ‘알게 된’후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중략)
즉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바뀐다’는 뜻이다. p.163
나는 책을 읽고,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철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가 담고 있는 철학자는 무려 50명이다. 스크라테스나 니체처럼 조금은 알고 있는 철학자도 있고 칼 포퍼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처럼 처음 들어본 철학자도 있다.(물론 내가 처음 들어봤다는 이야기이다) 질 들뢰르처럼 책과 그 책에 대한 해설서를 읽고도 이해에 실패한 내겐 미지의(?) 영역에 있는 학자도 있다. 분명한 건 이 모두가 각자 엄청난 철학적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의 철학만 이야기해도 책 한 권이 부족할지 모른다. 그게 어떤 면에선 우리가 철학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핵심개념만 가져오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자칫 잘못하면 책에서 예로 든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같은 결론만 전달하며 진부하고 지루해진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철학서의 형식과 전통을 과감히 깨고, 독자의 곁에 충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철학의 역사를 편집의 순서로 두지 않았고, 현실의 쓸모를 먼저 고려했고, 대철학자를 과감히 빼기도 하고, 철학으로 인정되지 않는 영역을 과감히 넣기도 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는 현실의 문제와 마주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을 정확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이야기 한다.
첫째, 상황을 정확히 통찰하기 위하여 둘째,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우기 위해 셋째, 어젠다, 즉 과제를 제대로 정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느낀 이유인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철학이 없는 전문가나 조직이 만든 비극을 너무 많이 봐 온 나로서 절절이 공감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거창한 이유 전에 나답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의 목적은 즐겁게, 나다운 인생을 살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중략)
본래 철학이란 것은 사회라는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 ‘더욱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p.33~34
그렇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토록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책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와 과제들을 사람, 조직, 사회, 사고 로 나눈 네 개의 콘셉트에 담고, 그 답으로 50명의 철학자의 철학과 사상을 나누어 담았다.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철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지금의 시대적 변화와 문제들을 직접 만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책을 다 읽은 후 깊이에 놀라 다시 확인해 보니 철학을 전공하고 비즈니스맨으로 오래 활동해 철학적 세계와 현실세계, 양쪽에 발을 걸친 저자의 흥미로운 이력과 내공이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책에서 그가 제기하는 현실의 문제들은 아주 사소하고 자주 마주치는 것에서 큰 주제까지 다양하다.
이를테면 핸드폰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을까?
이제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카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 즉 외적 인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답을 내 놓는다.
핸드폰에 소셜미디어 알림벨이 울릴 때마다 그 내용을 당장 확인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한 것에 미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스키너는 말한다.
더 많은 성과급은 사람들을 더 즐겁고 혁신적으로 일하게 만드는가? 에드워드 데시는 오히려 더 많은 성과급이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과 조직의 사상과 신조, 이데올로기는 커다란 보상이나 엄청난 폭력 아래서도 바뀌지 않는 굳건한 것일까? 리언 페스팅어에 따르면 인간의 신념은 아주 사소한 부조화만 만들어주어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답이 완전한 해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고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50명의 철학적 개념과 사상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비할 바 없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수학과 더불어 인류 최고의 학문인 철학을 오래된 도서관에서 꺼내 현실에 가져왔다는 것, 그것도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가져왔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존재 이유는 확실하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 머리는 하늘을 둔 철학의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한 이 한 권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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