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지혜 작가'의 작품을 사실 처음 읽는다. 제목만 언뜻 보고 서점에서 많이 보이는 너무 따뜻해 오래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작가에 대한 추천을 많아 책을 잡았다. 잡아보니 따뜻하기보단 오히려 막 첫눈이 올 때처럼 서늘했다. 그리고 첫눈이 오는 것을 볼 때처럼 마음이 심란하게 따스해졌다. 작가가 살던 골목은 늘 정이 넘치고, 돌아보니 아련하고 그리운 그런 골목도 아니었다. 오히려 희망보다 절망과 비애, 슬픔 같은 것들이 첫눈처럼 차곡차곡 쌓여있고  골목이다. 그 슬픔과 비애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골목 가로등처럼 참 맑고 담담했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제목은 참 괜찮은 눈을 가진 작가가 온다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책은 과거에서 현재로, 좁은 다락에서 골목으로,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상처, 비애가 눈처럼 차곡차곡 쌓인 과거는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그립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골목을 걸었던 나는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 끔찍하고 가난한 방이, 그 방이 있던 골목이 지금도 꿈에 나온다. 답답하고 답답한데, 참 희한하지. 삶은 계란 한 알 꿀꺽 삼킨 듯 답답하게 목이 메는데, 아무래도 그게 그리움인 것 같다. 주책맞게 나는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p. 188

    

  주책 맞게 그리운 골목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증오, 얽히는 수백 가지 감정이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헤어질 수도 없다.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선뜻 이야기하지 못 하는 비애를 작가는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어 서늘했고, 그 서늘함이 나를 위로했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p202

 

  나는 그녀가 걷는 골목에서 크고 작은 세상들을 보았다.  골목을 걷다보면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사건들을 만나는 것처럼 한 여자를, 노인을, 아버지를, 어느 종업원을, 가난한 제 3세계의 아이를 만났다. 큰 대로였으면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하고 지나갈 수 있는 얼굴들을, 사건들을 좁은 골목에서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주한다. 그 과정이 아프기도 우습기도, 신기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지나치고 나면 좁은 골목에서 돌아보듯 돌아보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는 말하고 싶어 하면서 네가 누구인지도 내가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기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p. 153

 

출구 없는 모욕과 비참만 남아 있을 때, 정의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수시로 생각해보는데, 요즘은 이런 질문마저 바닥에 묶인 어떤 삶들에 대한 무례인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해겠다. p 275

    

돌아서 다시 볼 때는 처음 마주쳤을 때와 조금은 달라 보이는 것처럼 이 책을 덮고 내가 본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참 괜찮은 눈이 와서, 이렇게 그 눈을 맞게 되어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