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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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삶을 살다 간 한 평범한 교수의 일생

그 생에 대한 담담한 묘사만으로 강렬한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

 

최근 출간 50년 만에 주목 받게 된 이 책, 『스토너』는 20세기 초중반을 살다 간 한 영문학 교수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의 스토너의 인생은 얼핏 시시해 보인다. 그는 미주리 대학에서 평생 조교수로서 강단에 섰고, 알려지지 않은 책 한 권을 썼으며, 죽음 뒤엔 그저 “단순한 이름”이 되어 뇌리에서 잊혔다. 그럼에도 저자 존 윌리엄스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을 “진짜 영웅”이라 호칭한다. 그의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본다면 이러한 저자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스토너는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다. 농사를 위해 입학한 대학에서 문학에 매료된 그는 영문학자로 진로를 변경한다. 곧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참전과 학업의 갈림길에 선 그에게 지도교수는 조언한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스토너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학업의 길을 택한다. 또한 순탄치만은 않은 이후의 삶에서도 자신이 결정한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수가 된 스토너는 이디스라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그러나 아내가 된 그녀는 자식과 살림을 팽개쳐둘 뿐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섣불렀다 생각하면서도 아내를 대신해 최선을 다해 집안을 돌본다. 학과장 로맥스가 자신의 제자를 부당하게 시험에 통과시키려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처지가 불리해질 것을 알면서도 불합격을 준 그는 학과장이 엉망으로 배정한 수업시간표를 받고도 묵묵히 강의한다. 심지어 사랑 앞에서도 한결같다. 제자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져 이제껏 느끼지 못한 충족감을 맛보지만, 이 관계가 학자로서의 삶을 위협하자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캐서린에게 이별을 고하는 스토너의 말은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해준다.


“당신은…… 당신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 우리 둘 다 지금과는 다른 사람,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스토너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연인마저 포기한 이 선택으로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단에 서는 기쁨을 누렸다. 죽음의 순간 그가 손에 잡은 것이 단 한 권의 저서라는 사실은 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삶은 종종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토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들 속에서 스스로와 대면해 가야 할 길을 고르고 성실하게 후회를 견뎠다. 도망가지 않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그는 강한 인간이다. 글쎄. 어쩌면 간신히, 누군가는 스토너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누구나 스토너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라는 요구에 현명을 가장해 굴복하곤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책 뒤표지의 카피,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는 말은 정면으로 반박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를 체념한 우리의 귀에 임종을 맞는 스토너의 자문이 들려오는 듯하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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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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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을 주제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모멸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방법을 탐색한 책이다. 

모멸감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을 뜻한다. 타인에게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성향의 한국사회는 모멸감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자살, 인터넷 악플 등 모멸감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들을 유독 심각하게 앓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특히 모욕을 당했을 때 맞서 싸우는 사회, 또는 모욕 당할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안한 개념인 ‘모욕 감수성’에서 저자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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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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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희망은 지극히 비현실에 속해 있고 목격된 암울은 지극히 현실에 속해 있다. 비현실에 속한 희망은 다시 현재의 암울을 가리킨다. 결국 총체적 암울로 부들부들. 그래도 나만은, 나만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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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선물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44
홍순미 글.그림 / 봄봄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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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찾다 이 책, <한밤의 선물>을 만났다. 한지란 걸 믿기 힘들 만큼 세밀한 색채 표현과 몽환적인 분위기, 그러니까 그림에 반해 집어 들었지만 읽고 난 후엔 내용까지 내 맘을 사로잡았다. 


어둠과 빛이 낳은 다섯 아이, 새벽 아침 한낮 저녁 한밤에게 시간이 선물을 준다. 새벽이에겐 어슴푸레한 물안개빛이, 아침이에겐 파랑새의 푸르름이, 한낮이에겐 태양빛 노오랑이, 저녁이에겐 고운 붉은 노을이 선물로 주어졌다. 그렇지만 한밤이에겐 그저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울고 있는 한밤이에게 형제들은 각각 자신의 색을 선물해주고, 한밤이는 다른 형제들에게 그림자로 보답한다.


건물 속에 들어 앉아 일하다 보면 어느새 사위가 어둡다. 매일이, 하루가 시계 속에 숫자에만 박혀 있어 창밖의 빛깔이 어땠는지 잊은 지도 오래다. 그러다 <한밤의 선물>에 담긴 하루의 빛을 보니 어쩜 이렇게 다양한 색을 갖고 있었는지 퍼뜩 깨달아진다. 참 예쁜 오방색이 이렇게 하루 속에 숨어 있었구나. 아니, 숨어 있지도 않았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매일이 지루하다 한숨 쉬고 있었구나. 문득 눈을 들어 하루를 가만히 응시하고 싶어졌다. 이 아름다움을 나 대신 보아준 작가에게 고맙다.


마지막 장을 한참 들여다 보다 괜히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한밤에 툭하면 깨어 무섭다 우는 조카도 이 책을 보며 한밤이의 예쁜 점을 알아봐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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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거대한 바다 위에 버티고 선

작지만 큰 또 하나의 뭍이었고

작은 우주였다.

 

어민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작가 김준의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이제껏 이처럼 섬의 과거와 현재를 인문학적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 있었을까?

해와 달이 만들어낸 ‘생태시간’에 섬과 섬사람들이 일구어나가는 삶의 흔적은 때론 눈물 나도록 처연하고 때론 가슴 벅차도록 감동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갯벌에서 꼬막을 캐고, 염전에서 소금을 긁으며 겸허와 감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섬사람들을 닮고 싶어졌다.

<섬문화 답사기>를 덮고 나서야 비로소 섬이 ‘섬’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섬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나도 섬사람이 되어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섬이 단순한 관광지로 전락해가고, 어떻게든 ‘개발거리’를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켠 건축업자들이 많은 요즘이다.

부디 그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의 작은 우주인 섬을 있는 그대로 지키며 사랑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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