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도둑놀이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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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도둑 놀이를 읽는 내내 숲의 향기가 코 끝을 맴돌았다.

스웨덴 국경과 맞닿은 노르웨이의 숲을 나는 거의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두껍고 높은 곳까지 솟아 있는 나무들이 빽빽한 숲.

숲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거칠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작은 강.

송진 냄새가 떠날 새가 없는 그 숲의 집들을 떠올릴 수 있다.

 

15살은 소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어리지는 않으며, 어른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나이다.

언젠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왔듯, 15살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헤매며 길을 찾는 나이인 것 같다.

카프카는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서 여행을 떠났고, 가족 간에 얽매여 있던 상징적인 문제들을 피할 수 없이 겪어나가며 어른이 되어 간다.

 

트론은 도시 소년이고 얀은 시골 소년이다.

트론의 아버지와 얀의 부모님 간의 미묘한 관계,

간첩 활동 -트론의 가족 관계까지 포함해 모두가 그 간첩활동의 일환이였을 뿐인.)

훔친 사과가 더 맛있듯, 도둑놀이를 흉내내어 말을 타고 놀던 트론과 얀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린다.

그러한 계기.

 

많은 사건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고,

그것들은 어쩌면 그들 내부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만,

어째서일까.

누구나 큰 사건을 겪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의 관계들이 크게 깨지지 않는 상태로 줄곧 이어져 오는 경우가 많다.

나또한 그랬다.

외부적인 거대한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 느껴지는, 어린이를 떠나 어른이 되는 순간들을 떠올리는 일이 내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잘한 순간들이 작용,반작용으로 날 이루어온 것 같다.

내게 15살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느냐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느냐를 두고 고민을 하는 시기였다.

소녀라고 불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멀찌감치 지나가버렸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겉모양을 주어졌지만

실제로는 부모님의 결정에 그저 따라야 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그리 어른이 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혼이 통하는 듯 하던 나의 친구를 잃고,

가장 신뢰할 수 있던 아버지가 떠나가버리고,

 

늘그막에 되돌아봤을때,

지금의 어른이 되도록 나를 몰아붙였던 것은,

그때 그 사건이었구나.

그때 그 사람들이었구나.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내 곁에 없고

상관없이 느껴지던 사람들이 오히려 내 곁에서 나를 지키며 있을 때,

그럼에도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미워하기도 하고

 

그럴 때가 올까.

아마도, 올 것이다.

트론에게 숲처럼, 내게도 고향으로 여겨지는 어딘가가 있겠지.

아주 먼 훗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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