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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게리 슈테인가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첫 시작은 고통이었다. 굉장히 두꺼웠기 때문에 시작부터 겁이 덜컥 났던 소설이다. 200페이지까지는 읽으면서도 내가 뭘 읽고있는 건가 하면서 어리둥절한 기분도 들었다. 분명히 '웃긴 책'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하나도 안 웃기다. 코믹하지도 않고 위트가 있는 느낌도 없다. 게다가 주인공이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저질이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눈이 찡그려질만큼 저속해서 책을 내던지고 싶었던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책을 읽다가 책 뒷면에 있는 온갖 찬사들을 읽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정말 이거 좋은 책 맞아?하면서 한숨을 내리쉬길 일 주일. 200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나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기대했던 '웃긴' 문체가 아니어서 실망했기 때문에 그만큼 접속을 못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광고를 잘 못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길거라 기대하지 않았다면 엄청 심각한 포즈로 책을 들여다봤지 않았을까 싶다.
줄거리만 보면 상당히 엉뚱하다. 뚱보에 부자인 미샤. 아버지가 죽고 뇌물을 써서 러시아를 탈출하지만, 그 중간에 가야했던 나라 압수르디스탄은 갑자기 세력분쟁이 일어나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그러다가 어처구니없게 장관이 된다. 무척 재미있어 보이는 줄거리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다기 보다는 혐오감이 들만큼 구질구질하다. 러시아, 압수르디스탄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다.
미샤는 뭐하나 아쉬울 것 없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오지만, 정작 그 외의 '자신의 것'은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알고 있지만 선뜻 건드리기 조차 힘들었던 '사랑'에 대한 진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오로지 자신, 인간 자체에게 주어진 게 맞을까. 고민을 한 게 아니라 고민하기조차 두려워한 미샤. 돈이 없어서 삶 자체가 고통인 사람의 정반대편에 돈 때문에 돈이 없는 상황에 대한 무지만 가득한 미샤가 있었다. 후자는 전자에게 이용당하는 셈이다. 전자는 약자를 자처하여 후자를 오히려 약하게 만든다.
미샤는 이미 먹을만큼 먹은 나이 서른이다. 대학까지 나온 그는 세상에 대해 알만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지만, 그걸 정말로 자신이 '아는 상태'로 헤집어보길 무서워했던 걸까. 그의 행동은 철없음을 벗어나 혐오스러울 정도로 축소된 인간상이다. 각종 묘사나 재미있는 사건들 보다, 나는 오로지 화자인 미샤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이 미샤라는 인물이 이토록 역겹게 나약하지만, 어쩌면 그는 필요도 없고, 사람이라기 보다는 이용가치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의 내면의 독백이 줄줄이 이어지는 소설 속에서 나는 미샤를 가엾게 여기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고 혐오하기도 했다. 내 일부분이기도 한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