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번째 눈과의 짧은 조우
브루스 보스턴 지음, 유정훈 옮김 / 필요한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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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시라는 장르에 해당하는 시를 모은 책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SF소설, SF영화도 있는데 SF시가 없을 이유도 없다. 이제는 장르라는 것이 그것 하나로 규정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니까. 여러장르가 혼합되고 크로스오버되는 시대에 SF시라는 말이 새롭다면 그건 그것으로 옛날 생각일 것이다.

 

 

평소 시집을 읽을 때는 그냥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영화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일단 그냥 들어가서 온전히 작품을 즐기고 그다음 작가의 이력이나, 시대 배경 같은 주변 것을 확인해야 편견이 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장르가 낯설긴 했지만, 일단 그냥 바로 첫 시부터 들어갔다. 첫 시의 제목은 <올빼미 같은 예술가>였다.

 

시를 이해하려 하지말자. 그냥 언어를 가지고 논다고 생각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여서 무리 없이 넘어 갔다. 그리고 주욱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특별히 SF시라고 장르를 규정지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시이고, 약간의 과학적 상상력, 이를테면 우주나, 로봇 같은 게 들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동물이 나오는 시는 동물시, 돈이 나오는 시는 경제시. 이렇게 세세하게 따지고 보는 게 되려 사고의 확장을 제한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죽 읽어본 이 시집의 느낌은 재미있다, 재기발랄하구나, 읽는 맛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일부 현대시들, 가령 읽기도 어려운 온갖 어휘를 갖다붙이며 실험이니 미래파니, 언어적 파괴니 헛소리하는 시들보다 훨씬 나았다. 읽는 동안 음악을 듣는 것처럼, 리드미컬했다. 문득문득 멈춰지는 곳도 많았다. ‘아틀란티스 빈민가’ (<아틀란티스 빈민가> 中)와 같은 특정 단어 앞에 멈춰질 때도 있었고, ‘개는 사르트르를 너무 많이 읽었다.’ (<당신의 로봇 개가 말을 듣지 않는 이유> 中) 같은 구절에 멈춰질 때도 있었다. 어쨌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묵독의 길이 질리거나 졸리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제일 인상적인 시는 <늙은 로봇은 최악>이란 시였다. 로봇이 늙는 다는 생각이 신선했다. 거기에 주름진 고무 피부의 느린 손길이란 표현도 로봇이건 일반 사물이건 작가가 사물을 볼 때 차가운 눈이 아닌 따뜻한 온도로 보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이든 책이든 컴퓨터든 고철이든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고 그것이 나이를 먹고 죽음을 향해서 약해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저미어졌다.

뒤를 보니 수상목록에 1989년 아시모프 독자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니, 그럴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이 계속된다면, 이따금 서재에서 이 책을 꺼내보자. 그리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다가 눈을 감고 먼 우주를 떠올려보자. 그럼 답답한 주변이 순식간에 순간이동 되어 눈앞에는 캄캄하고 광활한 암흑이 펼쳐질 것이다. 거기서 재치있게 반짝이고 있는 빛들을 찾아보자. 방금 본 단어와 구절을 기억하며 그 빛으로 들어가자.

 따뜻하고도 차가운 신비한 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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