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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쇄
임소라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뻔한 일상의
펀FUN한 일기, 『29쇄』
1.
『29쇄』는 임소라 작가의 6번째 책이다. 임소라 작가는 직접 책을 쓰고 만드는 독립 출판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29쇄』는 저자가 해오던 대로 직접 접고, 뚫고, 꿰매서 만든 책이 아닌 출판사 북노마드에서 발행되었다. 그러면서도 『29쇄』에는 마치 독립출판물 같은 새로움이 있다. 『29쇄』에는 사각거리는 수입지의 촉감과, 공들여 고른 듯한 고운 색감이 있다. 달력을 연상시키 듯 곳곳에 배치된 섬세한 디자인 요소도 있다. 그래서 『29쇄』는 매끄럽지만 왠지 공장 냄새가 나는 기성품과 달리, 정성이 담긴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책이다.
2.
저자는 서문인 ‘들어가며’를 통해 “제목을 29쇄로 정한 데에는 나를 29일 동안 스물아홉 번 찍은 기록이라서, … 1쇄부터 29쇄까지 그저 나라는 사람의 반복일 뿐인 이 글이 누군가에겐 13쇄의 나처럼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주길, 또 누군가에겐 29쇄의 나처럼 다른 책으로 건너갈 한 줄이 되어주길 바란다.”라고 밝힌다.
씻을까? 오늘 나갈 일도 없는데 그냥 있을까? 씻는 건 너무 귀찮다. … 안 씻으면 티가 나고, 씻으면 티가 안 난다. … 청소를 할까, 말까? 청소는 너무 귀찮다. … 청소를 안 하면 티가 나고, 청소를 하면 티가 안 난다. (16쇄, 안 하면 티가 나고, 하면 티가 안 나는)
저자의 말처럼, 『29쇄』는 29살의 한국여성인 저자가 29일간의 일기를 묶은 책이다. 일기답게 솔직해서 재미있고, 일기답게 펼쳐지는 일상사에 공감이 간다. 같은 상황, 같은 일에 대해 ‘어! 나도 이런 적 있는데.’라거나 ‘나는 이럴 때 화를 내는데, 이 사람은 웃어넘기는구나.’라는 발견을 하게 된다. 더불어 작가다운 글쓰기 방식과 표현력은 뻔한 일상을 펀FUN한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29쇄』를 읽는 독자는 남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과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소소한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강아지에게 함부로 쪼쪼쪼를 하면 안된다’는 깨달음이나, ‘술을 마실 때부터 알고 있는 내일의 괴로움’에 대한 끄덕임은 덤이다.
3.
가까이서 보자면, “29”라는 숫자에 끌려 이 책을 읽었다. 서른을 불과 14개월 앞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이쯤 되면 그럴 거라고 여겼던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내 것이 되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울렸다. 이쯤이면 사랑도 일도 멋지게 해내는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여전히 연애엔 어설프고 회사에선 깨진다. 입만 열면 같은 신세타령을 하는 20대 후반의 친애하는 여성 동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뭐 어땨용!"
우리 이렇게 재밌게 웃으면서 살면 되지ㅎ
4.
조금 멀리 보자면, “독립출판작가”라는 저자의 이력에도 마음이 쓰였다. 저자의 작품은 우리 세대를 삼포세대니 뭐니, 노오력을 안하고 열정이 없다며 비난 같은 충고를 일삼는 기성세대의 문법 밖에 있다. 저자는, 그리고 독립출판 작가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직접 책을 만든다. 대부분의 문화 산업을 대기업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이런 작가들의 작업은 독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준다. 그래서 더욱 『29쇄』같은 책이 반갑고도 고맙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손으로 만든 것에 약한” 인간적 욕구를 충족해주는 책의 소장 가치 또한 높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