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공부 - 어느 성질 급하고 의심 많은 여자의 마음챙김 이야기
레이철 뉴먼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를 낳기 직전 나는 생애 첫 공포를 느꼈다. 다름 아닌 출산의 고통. 물리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무엇보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강렬한 공포였다. 아파도 아파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아플 수 없을 때조차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죽고 싶었을 때에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처방전을 얻어왔다. 배가 아프면 이 약, 머리가 아프면 저 약, 복용 후 한 시간이면 고통은 사라진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넘치는 경이와 행복에도 적응이 된 이후, 또다시 나를 덮친 감정 역시 두려움이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건과 사고, 임자를 정하지 않고 들러붙는 질병들 속에서 내 아이는 안전할 수 있을까. 과연 나처럼 모자란 사람이 이 생명 하나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나는 또 처방전이 필요했다. 십년간 냉담했던 성당을 다시 찾았다. 절대자에게 아이의 안녕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필 그날의 복음말씀은 아들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이야기였다. 신은 나를 당장 시험에 들게 했다. 과연 아이에게 가해진 재앙을 나는 신께 복종하듯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참 가만히 앉아 있다가 미사가 끝나기 전 서둘러 나왔다.

 

엄마에게는 여러 자질이 필요하다. 밤새 잠들지 않고 보채는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기 위한 체력과 인내는 기본이고 소파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내는 순발력과 말 못하는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채는 직관력…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변신하며 엄마를 매순간 시험대에 올려놓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살아기 위해서, 엄마는 지치지 않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극복해나갈 마음의 탄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가 크는 만큼 탄성이 생기기 때문에 단시간에 길러지지 않으며 얼마나 탄성이 생겼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이 책, <엄마의 마음공부> 는 나는 칠년간 두 아이를 낳고 기른 나의 마음의 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하고 깨우쳐준 책이다.

아이와 나는 서로를 해치지 않으며 발전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가, 나는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나는 제대로 주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의무가 아닌 사랑과 진심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삶은 지금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와 아이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나는 아이가 바로 옆에 있어도 내 아이가 궁금하고 그리워진다. 그리고 무작정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 책에서 새롭게 인지한 것은 감정을 소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감정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렵다. 아이는 물론이고 엄마도 그렇다. 엄마는 대개 아이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다르게 접근했고 나는 그것이 다른 어떤 책들의 방법보다 자연스럽고 감동적이었다.

 

강렬한 감정이 밀어닥칠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감정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감정일 뿐이다. 그것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하고 너무 꽉 붙잡고 있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그 감정을 이해해보려고 하고 그 근원을 파고 들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강렬한 감정은 폭풍과 같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는 법, 나만의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 그 안에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폭풍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으면서 그것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폭풍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라. 폭풍우가 물러가고 나면 우리는 더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얼마 후에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단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사고들은 위에서 말한 폭풍과 같다. 그것을 견디는 힘, 지나고 나면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 아이는 물론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믿지 못하고 처방전을 찾아다녔나 생각하게 됐다. 엄마는 아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스스로 처방전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얼마나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처방전을 쓰는 사람일까.

 

그리고 하나 더, 저자는 또 하나의 공감과 위로를 준다. 바로 노화에 관하여. 아이가 커가는 만큼 엄마는 늙는다. 여자를 잃는다. 노화를 대해,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노화는 내 자존심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또한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바다로 향하는 거친 급류가 아닌 잔잔한 구간의 강물이 될 기회이다. 천천히 가면서 구름과 새들도 감상하고 사색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노화란 자기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도구와 수단을 얻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태 누리지 못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떠올리라. 틱낫한이 말한다. 노년은 달콤한 것이라고.

 

나는 편집자였다. 편집자는 소통하는 저자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틱낫한이라는 사람과 10년을 함께 한 이 저자가 그 시간동안 얼마나 큰 성장과 깨침을 경험했을지 감히 가늠해본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가장 깊은 가르침을 얻지만 그 다음으로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가르침은 책이다. 틱낫한의 10년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화한 저자의 생각과 일상을 따라가면서, 나는 저자가 나와 닮았다는 제멋대로의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모두 엄마 노릇을 잘 하고 싶다. 아이에게 꽤 괜찮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직까지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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