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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30대 여성인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요소들이 이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늙은 페니스, 십대 소녀의 섹스, 서로를 견제하는 두 남자의 관음증……
농밀함이 담긴 함축적인 일러스트와 산뜻한 캘리의 제목자에 이끌려 집어든 책이었다. 인물들의 엇갈린 시선, 살짝 들어올린 치마끝과 발꿈치, 말과 커튼, 안으로 접힌 표지 안에 등이 굽은 채 않은 늙은 남자, 그리고 은밀한 이름 은교!
어쩌면 이 표지는 이미 나에게 ‘불편할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꾸 말을 거는, 유혹적인 은교의 자태에 첫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저자의 요청에 따라 밤의 숨결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밤은 은교를 이해해주리라. 그러나 밤은 잠을 부르고... 소설 한 편을 열흘에 걸쳐 마감하는 기록을 세웠다. 은교... 여러 밤 나를 시험하고 의구심이 들게 했으며 나와 눈빛을 마주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나는 은교가 불편했다. 무엇보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건 여성을 바라보는 정체된 시선때문이었다. 은교가 노시인의 노트를 읽고, 왜 얘기하지 않았냐며, 내가 뭐라고... 하는 부분에서 나는 성녀 아니면 창녀의 공식을 깨지 못한 작가의 폐쇄적 시선에 당혹스러웠다. 십대 소녀 은교는 마흔에 가까운 남자와 관계를 맺으나 여기에 은교의 입장은 어디에도 없다. 싫다고 하면서 밀어내면서 술에 취한 그녀는 무감하게 성의 대상이 되고 둘 사이에는 어떤 교감도 이해도 없다. 이것부터가 나는 왜곡된 시선이라고 본다.
어디에도 은교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제목은 은교였으나 그녀는 중심이 아닌 두 남자의 공통의 대상이었다. 의아했던 건 은교가 두 남자가 서로를 사랑했으며 자기에게는 자리를 주지 않았다, 라는 하소연. 이즈음에서는 지성인 두 남자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젋은 여자에 투사가 됐다는 것인가 뭔가. 싶어 덮어버릴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 저자는 논점을 비켜가지 않았다. 다시 은교를 중심에 두고 두 남자는 은교를 욕망했다.
노인의 사랑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영혼이 있는 생명이 욕망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늙어질 테고, 늙어서도 사랑하고 싶다. 몸이 열정을 못 따라오면 아마 장탄식을 하면서 괴로워할 것이고 마지막 사랑에 달뜨며 하루를 일년처럼 살아내겠지. 그래서 노시인은 아프게 읽었다. 저자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짰고 서사는 흥미로웠고 노시인와 서지우에 관해서는 깊었다. 그들을 향해, 나의 늙음을 행해 연민을 가졌다.
문제는 은교다. 은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남자에게 빛나는 허벅지와 단단한 젖꼭지 이상일 수 있다고 기대한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 맑은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