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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내 마음은 어느 신에게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래서 모든 말씀에 열려 있기도 하다.
법정 스님의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읽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나는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를 통해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그리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매주 성당을 다니곤 했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에 올라오면서는 성당에 나간 적도 없고 기도를 해본 적도 없고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어느날, 신앙이 내게로 왔다' 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아이를 낳으면서부터였지 싶다) 다시 성당을 나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몸으로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처럼 우둔하고 미약한 존재가 과연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살이에서 내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또 하나의 생명을 업고 가자면 더 큰 힘을 가진 능력자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하는 건 아닌가.
창조의 신비와 구원에의 믿음, 이런 근원적인 접근이 아닌 일신의 안위를 꾀하는 접근이어서였는지, 최근 몇 달동안의 성당출입은 수많은 의심만을 양산하면서 장렬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과연 나는 그이에게 복종할 수 있을까? 그이가 준비했다는 나의 삶, 내 가족의 삶, 주변의 모든 관계들을 모두 그이의 뜻이라 믿고 겸허히 수긍하며 따를 수 있을까. 열심히 기도를 하면 답을 주신다는데 정말 기도만이 답일까. 그렇다면 나는 비주체적이고 비인격적인 존재인 것인가. 어디까지가 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인 것인가. 어쩌면 신앙인들에게는 중요치 않은 의문일 수도 있는 이런 점들이 다시 일요일을, 늦잠을 자고 대강 두 끼로 하루를 때우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는 날로 돌이켜버렸다.
어설픈 비신앙인의 신앙고백이 길어진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편견을 벗고 민낯으로 신앙인의 정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정서가 나의 그것과 일치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종교인들은 신앙인들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믿으면 이해할 수 있는데...'는 말들은 호소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물을 향하는, 사람을 향하는, 세계를 향하는 정서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시선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또한 마음의 한편을 연 발전적인 기회이기도 했다.
게다가 김병종 선생님의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생각과 문장들은 인생의 선배로부터 듣는 혜안의 메시지로 시종 편안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고 질감이 살아있는 선생님의 그림은 만져질듯한 입체감으로 마음에 담겼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중에 기껏 열흘 남짓 피고 지는 꽃. 그 황홀한 아름다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고 나면 다시 일 년의 삼백오십여 일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 그 섭리 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일까. 이제는 벚꽃을 통해 나는 소멸의 슬픔보다 소멸의 아름다움을 보려 한다. 소멸의 슬픔과 소멸의 고통 너머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신속하게 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니 붙들려 하지 말라는 것이야말로 창조의 또다른 섭리가 아닐까 싶다.
<절정의 아름다움마다 말갛게 고여 있는 슬픔의 빛> 중에서
‘그래, 인생은 한바탕 탱고와 같은 것이지.’ 가급적 즐겁게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우리가 근심과 슬픔에 젖어 있기보다는 꽃처럼 활짝 피어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라시지 않을까.
<인생은 한바탕 탱고와 같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