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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그림이 그녀에게>를 친구의 선물로 만나고 이 곽아람이라는 새로운 에세이스트에 대해서 기대를 갖게 됐었다. 나의 서른은 결혼과 출산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지나갔다고 생각했건만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건만 나의 마음속 파동은 분명 거세었고 그녀는 그 파동의 본질과 형상을 그림을 통해 풀어내주었다. 나는 그녀가 선택한 그림들과 그녀가 풀어낸 글들을 통해 나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책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얼마나 닮아있는가.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 책 읽었니? 너무 좋았어."
"그 구절 기억나? xxx ooo aaa qqq?"
"이 작가의 다른 작품, ooo과는 또 다른 느낌이잖아. xxx의 aaa이 연상되더라."
우리가 책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모두 외우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지극히 얕고 피상적인 감상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책이야기가 풍성하게만 느껴졌던 까닭은 아마도 상대와 내가 그 책에 가진 애정의 척도를 서로에게 보여주고 공감하면서 느끼는 '내면의 동류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런 한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작가는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책을 이미지로 기억하는 방법. 나는 이 책에서 보여준 짝 중 <중국인 거리>의 '나'와 이인성이 자신의 딸을 그린 '애향'이 특히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홍글씨>의 '헤스터'와 조르주 드 라 투라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닮았고, 나스메 소세키의 <산시로>와 기시다 류세이의 '다카쓰 고우치 군의 초상'도 그러했고, 일랴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정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그린 그림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중국인 거리>의 '나'와 이인성의 '애향'을 꼽은 이유는 어쩌면 동세대의 아픔을 알지 않고서는 매치될 수 없는 매우 근접한 싱크로율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중국인 거리의 소녀는 딱 애향만큼 투박하고 영악하면서도 서럽게 생겼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 책이 소개한 서른 편의 문학작품을, 이 책이 보여준 서른 편의 명화들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낯설었던 책도 있었고 -최인훈의 <가면고>와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자들>은 꼭 읽어보고 싶은 새로운 책이다- 잘못 기억하고 있던 책도 있었고 -<주홍글자>의 헤스터가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였다니!- 이미 사랑하고 있어서 탐독한 책 -데미안이 남녀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도 있었다.
이젠 책을 텍스트로만 읽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던 당시의 나의 상황과 내가 알고 있는 또다른 책과, 여행과 그림과 음악과... 물론 내가 이다지 박학다식하지는 않지만 그 시작에 대한 열정을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가 지펴주었다.
나도 모든 기다림의 순간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읽을 것이다.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인간은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한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나는 나'라고. 그러니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아무리 가족에게라도 벌레로서의 나 따위는 보여주면 안된다.
- <변신>에 대한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