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귀찮아서', '태양 때문에'
뫼르소는 『적과 흑』 의 쥘리앵 소렐, 『호밀밭의 파수꾼』 의 홀든 콜필드와 더불어 소설뿐 아니라 영화계까지 뭇 후배들을 열광시키며 가장 많이 벤치마킹된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다. 단골 식당 집 주인 셀레스트의 말마따나 `무의미한' 말은 하지 않으며, 건조하며, 흥분하지 않는. 하지만 뫼르소의 수많은 후예, 특히, 1990년을 전후해서부터 한국에서 쏟아져 나온 그들 중에 뫼르소의 적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를 찾기는 어렵다. 시대 유감. 심드렁함, 질척거리지 않음, 성마른 냉소, 설혹 이 정도라도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한들, 뫼르소라는 캐릭터가 지닌 광맥의 복잡함에서는 석탄 한 줌 파내는 것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그 주의 일요일, 뫼르소는 아침부터 온종일 아파트 창문 밖으로 일어나는 풍경을 바라본다. 뫼르소의 삶 자체가 일요일의 오후 같다. 일요일 오후라는 말에서 거칠게 추출되는 나른함이나 더 나아가 권태는 삶의 다른 한 면이 지닌 진실이다. 인간의 사회가 만든 집단적 제의와 유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단호함은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까뮈는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의 제의와 유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지 제거될 수 있다. 뫼르소는 “삶을 간단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을 거부”했으며, 그 무의미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방인』은, 관계와 세상에 대한 냉소와 가벼움을 피력하며, 사실은 너무 예민해서 상처 받기 쉽다고 인정 받으려는 소극성과 소심함의 진탕에서 질퍽대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만 묘사가 있을 뿐이다.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 마리와의 정사와 해수욕, 살인, 재판, 사형.
그러므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귀찮아서'라는 말은 이제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관계의 질척거림이 귀찮아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기가 귀찮아서, 그것이 무의미해서 뫼르소는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태양 때문에”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그는 근대의 경이적인 산물, 재판에서 소외된다. 재판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그가 어머니의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밀크 커피를 마시고, 울지 않았다는 사실, 장례식 다음 날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하고, 정사를 나누고, 페르낭델의 희극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을 두고 논쟁하며, 그 `사실'에 사형 선고를 내린다.
까뮈는 뫼르소가 아랍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태양 때문에”라고 대답하게 함으로써, 논쟁 거리를 제공하여 『이방인』을 많은 사람에게서 소외시켰다. 수많은 사람이 『이방인』 을 `읽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방인'을 두고 얘기하지만, 그 모든 사람이 `이방인'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재판정에 있던 사람들이 뫼르소를 대한 것처럼 『이방인』 을 대했다. 까뮈는 부조리를, 사람들은 부도덕과 편견을 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까뮈는, 그렇게 되길 원하진 않았겠지만, 그렇게 될 줄 안 결과를 통제한 셈이며, 그 `통제'의 숙명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는 선고가 내려지면, 그 자리에 앉은 젊은이는, 임신을 했건, 39도의 열에 시달리고 있건, 실연의 고통으로 서 있을 수조차 없건, 거기에 앉는 게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건 모조리 이방인이다.
`이방인'이라는 개념 자체는 타인을 전제로 한다. 이방인 뫼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에게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 속에 타인을 만들며 자신을 소외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타인에게 더 격렬한 소외를 돌려 받을지라도 자신에게는 소외당하지 않는다.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데, 남을 소외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태양은 지상의 모든 것에 그림자를 만들지만 그 자신의 주위에는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다. 까뮈는 자아와 의식 사이의 거리가 없는 이 인물을 만들면서 근대 이후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감옥에 갇힌 뫼르소는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마리 때문에, 담배 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고통은 지루함 없이 시간을 지탱하게 해주기도 한다. 금연 초기에는 담배를 피울 때보다 담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피하거나, 굳이 적응하려 들지 않아도 바깥 세상의 기억에서 오는 고통은, 완벽을 기할 정도로 그 세부를 샅샅이 들여다보다 보면 곧 익숙해지고 말아서 갇혀 있음은 더 이상 징벌이 되지 못한다. 그는 “바깥 세상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산 사람이면 감옥에서 백년쯤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징벌에 의연함, 징벌로 자신의 자유를 쉽게 빼앗기지 않음도 신화의 영웅이 지니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살아 있었던 뫼르소는 기도를 해주겠다는 사제에게 외친다. “......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올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 받을 것이다. 너 역시 사형을 선고 받을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까뮈는 자신의 인물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고”했다. 너무도 분명하게 살아 있는 뫼르소는 이제 자신이 선택한 것과 다름 없는 죽음 앞에서 살아 볼 마음이 내켰고, 계단을 올라간 곳이 아닌 그저 평지에 있는, 자신의 목을 자를 단두대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증오의 함성”으로 모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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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이룩해야만 할 사명도 없으며, 반드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될 감정도 없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있다.” - 앙리 바르뷔스 『지옥』에서
『아웃사이더』에서 세상의 다양한 `이방인'을 한데 묶었던 콜린 윌슨은 『지옥』의 주인공 `그'를 『이방인』의 `뫼르소'와 더불어 진정한 `이국자(outsider)'의 전형으로 평가한다. 1942년 발표된 『이방인』은 출간되는 즉시 `종전후 최대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문단은 물론 광범위한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까뮈에게 문학적 성공을 약속해 준다. 사르트르는 『이방인』 의 해설을 통해 “다만 제시될 뿐, 원래가 정당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지 않는” 뫼르소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선과 악, 허락과 금지를 가르쳐주는 목사가 도착하기 전 서머세트 모옴의 원주민들의 순진함”이 죄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방인』은 이 시대의 문예창작 가운데서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이방인으로 남는다. 까뮈는 그보다 몇 개월 후에 출간한 작품 『시지프 신화』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정확한 주석을 제공한다. “세계는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그토록 불합리적이지도 않”음을 지적하면서.
출저 : http://bookian.yes24.com/20010401/review6.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