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악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사랑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아무 이유없이 거부감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어떤 기운을 나의 본능이 두려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나는 그것이 인간의 '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더불어 악을 마주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나의 경보체계에 대한 안도이기도 했다. 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스스로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회의와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백미는 상담과정이다.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악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악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례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로 대화로 이루어지는 상담은 나로하여금 치료자의 입장에서 악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스캇 펙이 느꼈던 당시의 감정이 나에게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스캇 펙과 함께 악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조심스럽지만 그는 악을 하나의 질병으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분명 간단치 않다. 가치중립을 지향하는 과학에서 악을 다룬다면 가치지향적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과학이 이제부터는 가치지향적이 되어야 함 또한 주장한다. 우리가 따라야 할 가치는 사랑이며 오직 이것만이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무기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말한다. 경고에 그치지 않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훌륭하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악에 대항하기엔 약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선이 악을 이긴다는 오래된 진리이다. 나 또한 그것을 믿기에 더 늦기 전에 악에 대한 반격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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