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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식소매상, 시대의 논객 유시민, 초심으로 돌아가다
이 문구가 이 책에서 유시민이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의 결어가 아닐까 싶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p 47-48
사실 청춘의 독서가 출간된다 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노무현의 죽음 후 겪었을 마음의 부침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분명 그의 책에 어떤 형태로든 표현이 되었을 터. 격한 감정의 소요를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여러 행보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유시민이 자극받았던 여러 작가들에게처럼 나 또한 그의 저서들을 읽으며 마음의 키를 키워왔음에, 그가 현실정치에서 부딪혀 비난받고, 좌절하고 혹은 딛고 일어서려는 흔적들은 나에게 그의 신념을 실현시켜보려는 ’행동’으로 다가왔음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생각 외로 담담하다. 큰 일을 겪은 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 발버둥치는 듯 보일정도로. 길을 잃었다 고백하는 머리말에서 그는 오래된 지도를 다시 꺼내들어 그가 영향을 받은 고전들을 통해 자신의 족적을 되새김질한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자극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저기에서 자주 인용되어서 실제로는 읽지 않고서는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거나, 마치 정말읽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소개된 책 중 최인훈의 광장,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 정도만 읽어보았다. 몸으로 체득되지 않은 지식은 한낱 수많은 불특정 정보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수백번, 수천번 들어왔을 이 고전들을 평생 한번 읽어볼까? 얼마전 좋은 이웃님(흰수염고래님)의 포스팅에서 표현된 ’젊은이는 정보가 아닌 ’자극’을 찾는다’ ’자극없는 정보는 무색무취의 와글거림’이란 문구가 뇌를 파고들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던 경험과 같은 충격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유시민은 또 다시 나에게 지적욕구를 불끈불끈 솟게 만들어준다.
내 생각이 ’제대로’ 내 생각이 되도록
퇴임한지 15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은 카타리나 블룸과 똑같은 상황에 봉착하자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길을 선택했다 ...
진실을 잘 알지 못하면서 욕을 했다는 미안함, 자신도 젊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는 후회, 이런 것들이 수백만 명의 조문 행렬을 만들었고 봇물처럼 눈물이 터지게 만들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p. 293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
14편의 서평 중 가장 가슴이 아팠던 꼭지는 바로 이 책,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다. 이 소설은 견제받지 않는 언론의 무자비한 횡포가 개인을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하는가에 관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 글의 초고를 쓴 뒤 한달이 채 되지 않아 노무현의 서거를 맞았다 고백한다. 한페이지 가까이 되는 각주를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부끄러웠고.
그리고 생각 더하기, 언론의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정보를 제대로 습득하려면, 제대로된 ’思考’와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지도록 해야할 것.
그래도, 역사는 발전한다
나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유용한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더 존중하는 쪽으로 사회제도가 진화하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정작 그러한 제도 진화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고 비난할 때 슬픔을 느꼈다. ....
원래 그런 것이니 상처받지 말라고. 보수성은 유한계급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p. 243
똑같은 생활환경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제도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더 유연...
역사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평균적 지성과 성찰 능력도 더 높이 발전하며 제도의 진화 역시 그만큼 빠르고 수월해진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p. 244
저자는 현실정치에서 국민의 ’속물성’을 경험하며 좌절하기도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의 그런 ’섭섭함’은 이 꼭지에서 살짝 드러내기도. 그러나 그는 그것이 ’인간 고유의 보편적 성향’이라는 베블런의 이론에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베를런처럼 뒷짐지고 앉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 바꾸려 하지말고 그렇게 살아’라고 할 저자가 아니다. 그는 역사는 ’발전’하며, 그것은 제도의 ’진화’와 더불어 인간을 성숙케 한다고 믿는 ’긍정’론자다. 하여, 그는 정치의 ’위대함’을 역설한다.(사마천 <사기>,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인류를 발전시키는 현실적 방안이라 여기는 것. 그의 다음 행보가 조심스럽게 기대되는 이유라고 한다면 너무 큰 이상일까.
내 삶의 이정표는 과연
14편의 독서기록문(?)을 읽으며, 어려운 저서를 마치 ’읽은 것’같은 착각에 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진실로 내 가슴으로, 내 몸으로 ’체득’해 내껄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것.
내 블로그의 제목은 6년째 ’행동하는 젊음’이다. 과연 내가 진실로, ’행동’을 했을지에 대해선 부끄럽기만 하다. 목표만을 세우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 인용한 ’무식무취의 와글거림’과 다를바 없다. 내 영혼을 체웠던, 혹은 체울 책들을 온 몸으로 느끼려 한다. 그래서 내 인생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있다면, 그건 ’발전’이 될 것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내가 아닐 것을 믿는다.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준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