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 최고의 천재 학자, 정약용!

그는 그 방대한 저서만으로도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역사 속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정조시대에 대한 최근의 폭발적 관심, 그 시대의 선구적 인물들, 그 중 정약용은 단연 독보적이다. 정약용에 대한 관심은 그를 다룬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천재적인 그의 행보가 궁금했던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아들 학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책은 사상가, 학문가로서의 역사 속 정약용 뿐 아니라, 그 시대를 힘들게 견뎌낸 그들의 ’가족’이 담겨 있다. 

역사 속 인물, 그 생생함을 전하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노론 벽파들의 득세는 극에 달하고 신유년 그 악랄했던 박해가 시작된다. 동시대를 살아간 선구적인 학자들 대부분이 서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있던 천주교는 기득권을 유지시켰던 유학의 사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위협적’ 존재였을 것이다. 그 중심에 정약용의 집안 사람들이 연류되었고, 정약용 또한 그 칼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역사 책에서만 보았던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사건, 최초의 신부 이승훈 등이 모두 정약용의 일가였으니,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을 해하려는 무리들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였음이라. 그들의 소원대로 정약용은 조정의 권좌에서 완전히 물러나 전라도 강진의 다산으로 유배되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유배생활이지만 게을리 하지 않은 그의 학문탐구와 굳은 의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난 정약용 일가의 비참한 삶 또한 묘사되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인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명문가의 자제에서 순식간에 ’천주의 무리’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학유의 인간적인 고뇌와 한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그래서 더욱 이 책속의 인물들은 뭔가 신화적이고 근접할 수 없는 역사 속 인물들이 아닌, 인간적이고, 친근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볼 수 있는  ’사람냄새’ 가 난다. 


’흘려보낸 시간’과 ’채워가는 시간’

작가는 정약용의 아들 학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지난 7년간 유배지 강진의 다산에서 보낸 아버님의 시간은 놀랍기만 했다. 나의 시간이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었다면 아버님의 시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것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운명이 내려준 형벌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아버님의 시간은 연동 운동을 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창자의 굵다란 관과도 같았다. 관의 벽에는 건강한 사람의 창자처럼 부드럽고 탐스러운 융털이 나 있었다. 아버님의 사색과 경험, 만남과 추억들이 올올이 아로새겨져 있는 융털은 시간의 관을 늘였다 당겼다 하며 우직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학유가 2년간 아버님이 있는 강진으로 내려가 생활을 하며, 느낀 다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동안 집안의 몰락을 괴로워하며, 위축되고 고뇌하며 보낸 시간을 후회하고, 변함없이 학문에 정진하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을 작가는 위에 같이 표현한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내가 과거에 어떤 위치에 있었건, 지금 어떤 위치에 있건...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꽉 꽉, 채워 나 자신을 다듬고 쌓아 나가는 것, 그것이 미래의 내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그는 또 말한다

"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막힌 것이 아니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거나 위대한 학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느냐? 하고자 하려는 성의만 있다면 어던 난리 속에 있더라도 발전이 있는 법이다. 너희들이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를 포기하려 하느냐? 앞으로도 이렇게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

문득, 몇 년 전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껴, 무기력증에 빠진 나에게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써준 편지가 생각난다.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내용의 딸의 걱정이 한아름 담긴 아비의 글은 시름시름 앓던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 주었다. 다산이 그의 아들에게 준 깨닳음도 이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지 말고,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아비의 진심어린 충고는 그 누구의 위로보다  마음의 큰 위안을 준다.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밀려온다. 뿌옇기만한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이 책은 정약용의 아들 학유의 눈을 통해,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는  똑같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라, 너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네 속에 꽉 꽉 채워,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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