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니걸스는 요일팬티로 비유하는 여러 남자와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하며 살아가는 서른세살의 여주인공 정인과 그 친구들인 라니, 재순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심리학을 전공해서인지 주인공 정인도 심리학을 전공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연애 에피소드보다는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과 변화에 좀 더 할애한 느낌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가 변화하면서 복잡하게 느껴지는 마음의 울림과 그 울림에 힘겨워 좌절하고 쓰러지는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지켜봐주고 응원하는 친구들. 지극히 평범한 이 시대의 청춘들의 모습일 듯하다.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것 -사실 서른셋의 나이를 늦었다고 하기엔 이제 사회가 변 한듯하다- 은 그만큼 다른 일들에 더 관심을 쏟아 또 다른 자신만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될텐데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사랑은 권력이다'라는 명제가 책을 읽는 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랑이란 이름의 권력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다치고 힘들어하면서도 마약처럼 계속 빨려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소설, 노래 가사속의 사랑들에 공감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자신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어쩌면 이상향으로 바라던 사랑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있어서 절대적인 법칙이나 방정식은 불가능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p256 '사랑은 두 사람이 가진 잣대만이 통용되는 극히 상대적이고 밀폐된 은밀하고 위험한 우주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사랑의 아픔이 반복되는 것은 그 사랑들 어디에도 완벽하게 자신과 똑같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수 십억의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수 십억의 각기 다른 사랑들에 각자 행복을 맛보기도 하고, 좌절을 맛보기도 할 것이다. 완벽한 커플로 주위의 시샘을 받는 사랑도, 정인처럼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상처입은 영혼들도 모두들 그렇게 사랑은 계속되리라. 사랑과 연애를 다르다고 진중히 고민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오랫만에 연애소설을 읽은지라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별개의 의미로 이해가 되었다. 느끼는 감정의 질이 다를텐데 둘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연애가 사랑으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물론 발전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또 사랑이 되어버렸지만 어찌어찌하여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포기해야 한다면 그 고통은 누구나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주리라. 누구나 그런 시절을 겪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그저 추억뿐인 것을 알게 되버리는 것이겠지. 사랑보다는 정으로 살아가는, 어느덧 학부모가 되버린 나에게 다시 한번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더 크게 만들어가는 단계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봐도 좋을듯하다. 비록 후회하거나 상처받더라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싯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