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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 - 우리이웃
이동권 지음 / 알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 전부터 아빠가 가는 귀가 부쩍 먹었다.
"아빠, 찐이(강아지) 목욕시켰어?"
"..."
"아빠, 찐이 목욕시켰냐구요~~"
"응? 여보, 쟤 뭐라 그러는거야~ 난 안들려."
세 달 전 아빠가 사무실에 티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다드린 적이 있다.
아빠는 큰 건물의 시설관리를 하셨는데, 건물 지하 깊숙히 들어가야 근무장소가 나온다.
찌잉~~~. 기계소음들로 요란했다. 엄청난 전자파가 내 몸을 휘덮는 것 같았다.
티비를 갖다놓고 한 두시간 놀고 가려고 했으나, 10분도 채 못 채우고 나와버렸다.
너무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속으로 미안했다.
아마도 가는 귀가 먹으신 걸 보면 이런 근무 환경 탓이리라 생각을 했다.
'우리이웃 밥줄 이야기(이동권 쓰고 알다 펴냄)는
바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지하실 깊은 곳에서 보통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에 마음 고생하는 그들의 속마음을 인터뷰한 책이다.
트럭 노점상, 감단(시설관리 경비원)노동자, 때밀이, 도부(가축 잡는 사람), 누드모델, 우편배달부, 시각장애인 안마사, 무명가수, 교도관...
글쓴이는 밥줄 노동으로 지친 그들에게 맨 몸으로 다가가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뻘쭘하지만 그럴 법도 하다. 하루하루가 힘든데 인터뷰할 여력이 어디있겠나.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마도 인터뷰를 요청하는 글쓴이마저 자신들의 밥줄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많은 사람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들의 속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병으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 안마사에게 가장 속상했던 말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눈이 먼 게 낫지"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때밀이 노동자는 때밀이를 괄시하는 사회때문에 아직도 자기 아이들에게 직업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성 누드모델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기가 발기된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온갖 험담을 듣고 결국 그만 두었다고 한다.
트럭 노점상은 그 날 번 것으로 그 하루를 산다. 정말 내일이 없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이 어쩌다보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일에 뛰어들었지만, 자신들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것이다.
한창 예민하던 청소년기, 우리집은 아빠의 트럭 노점으로 번 돈으로 살았다.
생선장수, 인형장수, 화분장수...
우리 동네 어귀에서 장사 할 때면 일부러 아빠를 모른 척하거나 멀리 돌아서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때밀이 아저씨의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저 당부는 왜 이렇게 내 가슴을 쓰리게 만든단 말인가.
하루 번 돈으로 하루를 살아야하는 트럭 노점상의 "장사가 너무 안 되요" 라는 말은 아빠엄마에게 용돈 투정이나 했던 철이 없어도 너무 없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새벽 2시, 어느 늦은 귀가길에 청소 트럭이 눈에 띄었다.
트럭에 한 환경미화원이 매달려가다 내려서 쓰레기 봉지들을 줍는다. 그렇게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계속 트럭에 싣는다.
냄새나고 더러운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 그리고 남들 다 자는 깊은 밤에 일어나야 하는 일.
고귀하신 국회의원 나으리들께서 저 일을 할 수 있을까?
회사의 사장님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었다는 뉴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비정규직이 하는 일은 정규직보다 더 단순한 일이기 때문에 적은 임금을 받아도 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나 자신도 저런 편견과 직업의 귀천의식 속에 그들을 바라봤던 것은 아닌가?
글쓴이는 3년 동안 더운날 추운날 그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우리 이웃들을 찾아다녔다.
이 책은 밥줄로 인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게 끔 일하는 노동의 고귀함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정부 정책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 최근의 경제위기로 더욱 피폐해진 일상도 엿볼 수 있고, 노동 3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삶도 볼 수가 있다.
언젠가 사람들이 "당신 직업이 뭐요?" 라고 묻는다면,
"나, 때밀이요, 청소부요, 누드모델이요~" 라고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그 밥줄에 대해 서로가 박수쳐주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소박하게 꿈꾸어 본다.
더 나아가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하고싶은 일이 되어 내 마음을 풍족하게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