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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실종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평점 :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알제리 출신 작가 아시아 제바르(1936~2015)의 11번째 장편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알제리 출신 작가의 글은 처음 읽어봤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알제리'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것이 기대가 되는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소설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제바르는 알제리에서 태어났지만, 부친 영향으로 유년기에는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따라서, 프랑스와 알제리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고, 어렸을 때 타국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작가 본인의 정체성 확립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나의 예상과 일치하게도, 문화적 경계에서 방황(?)하던 작가 제바르의 경험과 관심이 100% 녹아있다. 주인공 베르칸은 1991년 가을,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고국 알제리로 돌아온다. 고국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 국가였는데, 알제리가 독립한 이후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생활을 이어간다.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고국인 알제리로 돌아오는데 이미 기억속 고향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부분이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흥미 있었던 2부 '사랑, 글쓰기'이다. 베르칸과 그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흥미는 최고조를 향해 달려간다. 고향에서 만난 새로운 사랑 마리즈와 사랑을 나눈 직후 아랍어로 속삭이며 왠지 모를 갈증이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베르칸은 불어와 아랍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짐나, 아랍어(모국어라는 표현이 맞는 거겠지)로 소통한 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주인공은 <청소년>이라는 소설을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가 가진 힘이란 그런 것일까. 언어가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큰 뿌리이자, 생활기반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프랑스어의 실종>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변화, 또 서술 시점(1~3인칭)의 변화가 잦아 처음 읽을 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언어와 여성 문제,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알제리 근현대사에 대한 내용이 수려한 문체로 전개된다. 깔끔하게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역사학을 전공한 아시아 제바르는 정복자의 시선에서 본 역사의 편향성과 감춰진 식민 지배의 악랄함과 폐해를 고발하고, 탈식민화의 수단으로 주체적인 역사를 서술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도 비슷한 역사 속에서 이런 내용의 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따.
문학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좋은 문학은 많이 읽고 싶다. 내게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그랬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내게 그런 소설이다. 이 책도 다시 한 번 읽어볼 계획이다. 곱씹어보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무엇인가가 나를 찾아올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