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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8월
평점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세상의 이치를 정확히 간파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모든 학문에 단 한 가지
간단한 원칙을 적용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세기에 이 생각을 panta
rhei, 즉 "만물은 유전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물은 흘러가기에 강은 다시 보면 더 이상 같은 강이 아닌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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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강물처럼 형태는 바뀌지 않지만 끊임없이 변한다. 의사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안다. 환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날
때, 기다려 보는 것보다 더 나은 치료법은 없다. 대부분의 증상은 그냥 저절로 사라지므로 의사가 며칠 뒤에 다시 와 보라고 하는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진단도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느지' 지켜본 이후에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여기서 핵심은 기다림을
멈추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시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21장, p305)
독서의 큰 장점은 간접 경험이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직접 경험으로 겪어보지 못할 다양한
경험을 독서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다. 한 때 의사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담임선생님께서 '현대 의학의 이해' 같은 류의 책을
선물해주셨는데, 고등학생인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려워서 꿈을 다시 생각해야 했고, 실제로 내 성격이나 흥미와 의학을 공부하는 일은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은 어느 새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10여년을 의학 분야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사실 크게
아프지도 않고, 아플 때에 병원을 가는 것말고는 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생각할 틈이 없었으니깐.
이번 을유문화사에서 발간한 '메스를 잡다'는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의미있는 책이다. 평생
몰랐을지도 모를 역사 속으 의학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심지어 이런 수술이 있나 싶을 정도의) 수술을 통해 의학 뿐만 아니라, 의술을 다루는
인물, 그 속의 역사도 촘촘히 다룬다. 고전 <총.균.쇠>를 중 '균'의 이야기와 이번 책 <메스를 잡다>도 어느 정도
그 궤도를 비슷하게 한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점은 단순히 '의학'이 의학으로만 머물러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례와 인물을 통해 그 당시의 과학, 역사, 의학이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했다. 또한 다양한 역사 자료와 인터뷰, 언론 보도, 전기
등을 한 책에 함축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라 더욱 더 흥미로웠다.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던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는 세세한 의학적 용어에 의존하기 보다는 역사책을 읽는 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이제 대략의 내용을 파악했으니 다시
읽을 때는 용어 해설의 용어들을 다시 한 번 익히면서 좀 더 과학적인 측면에서 읽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