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사계절 1318 문고 123
김민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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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마음의 밀월

서점이나 도서관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읽어야만 하는 책이나 읽으려고 결심한 책이 아니라 우연히 읽고 싶어지는 책을 만나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일까?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는 서점에 진열되어 있었다면 정말 우연히 눈이 가고, 손이 가서 펼쳐볼 만한 예쁜, 봄 색으로 가득한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겠지? 아! 지구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표치처럼 분홍색과 노랑색 가끔은 푸른 색과 보라색이 흰색의 바탕위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순수하고 맑았던 하얀 마음들이 첫사랑의 설레임과 행복, 기다림과 슬픔 등을 겪으면서 아름다워지고 다채로워지는 이야기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나와 '너'가 등장하고 풋풋한 고등학생인 남자 주인공은 관심을 갖고 있던 여자 주인공이 권한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빨리 읽고 그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그 아이가 이사 가기 전까지 날마다'라고.

하지만 풋풋하고 씁쓸한 첫사랑의 성장이야기를 기대하던 독자에게 작가는 조금씩 낯선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먼저, 여학생이 건넨 책은 사랑의 시집이나 진지한 철학이나 호기심 넘치는 과학책과 같은 10대의 관심을 보여주는 책이 아닌 묵직한 두께의 '모비딕'이었다. '나'에게 책을 준 새롬이는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음악을 듣거나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숨이 차고 땀과 눈물이 뒤섞여 눈이 따갑고 실내화 밑바닥이 찢어지도록 달린다. 조용한 가운데 뜀박질 소리와 가쁜 숨소리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소녀, 그리고 '나'는 가슴속에 생겨나 '이새봄 심실'로 자신의 마음이 작동함을 느끼고 자신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소년과 소녀.

시간은 점점 흐르고 4월 15일. '나'는 책을 다 읽었고 새봄이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4월 16일. 뛰고있는 새봄이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나'. 지석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꼭 혼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새봄이.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사태에는 우주 전체가 어마어마한 장난이나 농담으로 여겨지는 야릇한 순간이 있다. - 모비딕 49장의 첫문장.

향유고래를 쫓아 온 생을 바친 애이해브 선장과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마음의 밀월을 나눈 이슈메일과 퀴케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비딕'과 '모비딕'을 읽으면서 시작된 지석이와의 만남과 인연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새봄이, 그리고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는 지식이가 나누는 마음의 밀월.

그리고 '모비딕'과 이 책의 배경이 되는 푸른 바다와 고래들. 4월의 잊지 못할 우리의 기억들.

좋은 소설이란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내면의 아픔과 상처, 성장과 회복의 과정들을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해도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고 결국 다 읽고 난 뒤에 먹먹하지만 따뜻한.. 그래서 책 속의 글귀를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들고, 내 옆에 있거나 또는 내 자신인 소설 속의 새봄이를 만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죽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 대체될 수 없다. 그들이 남긴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마다 독특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자기만의 죽음을 죽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유전적, 신경학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 나의 생애 중.

모든 삶은 가치있고, 살아있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아직은 여리고 부족해서 서툴고 방황하는 것 같지만 '순간이동서'를 주고 기다려주는 담임교사처럼 4년 동안 묵묵히 새봄이의 곁을 지킨 아빠처럼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고 관심을 주면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행복하고 슬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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