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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머리카락 -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ㅣ 사계절 1318 문고 121
남유하 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1월
평점 :
낯설지만 익숙한 세상, 과학소설이 말해주는 우리의 삶.
행복은 상대적인 거라고 하셨지. 사람들은 늘 비교한다고. 내가 하는 일이 캐피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비교 대상이 없으면 행복도 없는 것 같아. 프리빌이 없으면 캐피탈 시민들이 행복할 리 없는 거지. 우리의 삶을 보면서 자신들이 옳다고 느끼고, 풍족하고 잘 정비된 곳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느끼는 거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프리빌에 살고 있는 미노는 캐피탈에서 추방된 주안에게 말한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그래서 프리빌과 캐피탈은 서로를 꼭 필요로 하고 결국 두 사회는 같은 모습이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과학문명이 이룩한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기반하고 있다. 이미 시작되었다는, 변혁의 시대인 4차 산업혁명 시대도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끌어가고 있는 우리 삶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세돌이 은퇴하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며 사물인터넷이 보편화되는 세상. 배양육으로 식사를 하고, 로봇들이 일을 하며 인공지능이 인간들이 해왔던 많은 부분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고, 유전자를 자유롭게 조작해서 원하는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소설은 이렇게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에 가져오고 있거나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되는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표현하거나 미래사회의 인간성 위기를 경고하는 문명비판적 통찰이 담겨 있기도 하다. 최근 방송에서 다시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멋진 신세계’도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살았던 세상에 대한 비판적 통찰이 잘 드러나있는 책이다. 그리고 20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해 준다.
‘멋진 신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현실세계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라면 ‘푸른 머리카락’에 실려있는 과학소설들은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현재 발달한 과학기술의 가져올 구체적인 변화들을 그려내고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로이 서비스’, 유전자 정보를 읽어내고, 조작하는 ‘오 퍼센트의 미래’, ‘두근두근 딜레마’, AI 생체칩으로 통제되는 세상인 ‘알람이 고장난 뒤’ 와 같은 소설은 이미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AI, 유전자가위, 로봇 휴머노이드 등의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가져올 변화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고 매니아층에서만 읽는다고 인식되는 과학소설이 대중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점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푸른 머리카락’과 ‘고등어’는 외계인과 함께 사는 세상이나 외계문명과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외계인과 외계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은 과학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소재이고 공상과학영화에서도 주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두 소설 모두 외계인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백과사전 속에 사진으로 보거나, 물 속 코쿤 속에 잠들어있다고 들었거나, 불빛만 비추는 우주선 속에 미지의 생명체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인들은 이들에 대해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추측하고 상상하고 이야기하며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의 논리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인들의 이야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프리빌 세상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것은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캐피탈에서 추방된 주안은 이렇게 프리빌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고모가 자이밀리언과 결혼한 것에 혼란스러워 했던, 지유는 지구인과 자이밀리언 혼혈인 재이에게 ‘지구인, 우리 수영할래?’라고 말하고 같이 바다를 헤엄친다. 푸른 머리카락, 분홍색 입술에서 뻗어나온 촉수, 황록색 눈을 가진 재이의 모습은 낯설고 놀랍지만 친구와 함께 헤엄을 치며 노는 지유는 즐거웠고, 자이밀리언이 코쿤 속에 잠들어 있는 바다는 여전히 푸르렀다.
주안과 지유가 사는 삶처럼, 우리의 미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할 것이고 익숙하지만 낯선 모습들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소설은 그런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게 해 준다. 낯설어서 두렵고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 있을 미래는 현재의 익숙함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정해져 있는 운명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따라 자이밀리언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는 ‘고등어’의 의미를 분석하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과학소설을 읽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해야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