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연인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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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연인으로서 장소가 필요한 사람, 하나의 주제에서 뻗어 나가는 사고의 확장을 좋아하는 사람, 픽션 에세이 장르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 한 줄 후기
사랑은 연인을 발명하고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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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산문집 『장소의 연인들』은 연인들이 그려내는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픽션 에세이로 풀어낸 책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연인들의 장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에서 출발해 연인들의 내밀하고, 개방적이며 원초적인 장소에 대한 상상과 탐색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도서나 영화의 장소를 가져오고, '그'와 '나'를 장소와 글 속에 배치함으로써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장소성의 고유함과 사랑을 흔적을 픽션 에세이로 그려낸다. 해당 도서는 또한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의 1차분 도서 중 한 권이며 다른 두 권으로는 『토리노 멜랑콜리』와 『경험이 언어가 될 때』가 있다.

p.9 장소는 함께 있음이라는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음을 증거한다. 사랑의 사건은 장소 발생적인 성격을 갖는다. 사소하고 우연한 장소는 연인들의 시간을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별성을 갖게 된다. 연인들의 장소는 임의적으로 탄생한다. 연인들은 장소를 발견한다.

p.46-47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연인들은 공원의 계단에 머물 것이다. 그때 계단은 다만 오르내리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쉼터이고 무대이며 작은 방이다. (중략)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언어는 없기 때문에, 실패한 말들은 계단 위를 떠돌다 몇 개의 단어들만 얼룩처럼 남는다. 그 말들의 실패가, 계단이라는 장소의 실패는 아니다.

p.137 목이 잘린 불상이 어둠 속에 앉아 있다면 밤공기를 응고시킬 것 같다. 불상을 세운 시대와 불상의 머리를 잘라 버린 시대는 다를 것이다. 가장 숭고한 것이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 되는 세월이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돌에 새길 수 없을 것이다.

p.156 이 거리는 국가와 인종 등의 정체성에 묶여 있지 않는, 떠나온 사람들의 거주지였다. 국가와 제도 바깥에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난민의 시간을 살고 있다. 언덕 아래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과, 세상의 경계에서 사랑을 찾아낸 연인들은 이미 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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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끊임없이 장소를 불러내고 연인들을 가져다놓는다. 성별도, 이름도, 관계도 알 수 없는 '그'와 나'를 상정함으로써 짧은 소설 혹은 에세이를 풀어낸다. 이 책은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장소와 그 장소가 가지는 특성을 그려내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그려내는 장소와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그러지는 장면은 '그'와 '나'를 넘어 읽는 이의 장소로까지 이어지고, 이때 읽는 이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소는 기억 속에 자리한 연인으로서의 장소(읽는 이가 가진 그의 기억)가 된다.

사랑은 어느 감정도 틈입할 수 없는 고유한 성질과 속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사랑은 완벽하고 낭만적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연인들은 알게 된다. 사랑에는 사랑을 제외한 모든 감정이 뒤섞여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착각을 감수하 고서라도 뛰어들 만큼의 힘이 있다. 연인들은 곧 그 힘을 가진 사람이고 그들이 장소를 발명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자 마땅한 일이다.

사랑은 그와 나를 어딘가로 숨어들게 하고, 서로의 피부를 맞닿게 한다. 그러한 감각은 장소를 발명하고, 그렇게 발명된 장소는 또 한 번 사랑을 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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