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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 번 -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1년 7월
평점 :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서문과 1장을 지나있었다. 의식하지도 못한 새에 넘어가던 페이지. 그의 글엔 페이지를 술술 넘어가게 하는 힘과 동시에 쉽게 지나치지 못할 순간이 함께 있었다.
1장을 읽고 네이버에 '장영희'를 검색해보았다. 2009년 세상을 떠난, 큰 눈을 가진 중년의 여성.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을 짚었으나 아버지를 따라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와 교수가 된 사람. 깡총한 앞머리와 어린아이 같은 얼굴. 그녀의 사진을 볼수록 그녀에게 마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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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한 번 생겨난 사랑은 영원한 자리를 갖고 있다는데,
p.46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 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 역시 수반하게 마련이다.
p.68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 짧은 시간, 이 하나의 점 같은 공간이 우주인 줄 알고, 도대체 왜 날 건드리냐고,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조목조목 따지고 침 뱉고 돌아서려던 나의 개미 마음이 부끄럽다.
p.89 까짓, 영어의 p와 f 발음쯤 혼동하면 어떤가. 영어는 기껏해야 지구상의 1/3 정도 인구가 알아듣는 말이지만, 불쌍한 노인을 보고 측은하게 느끼고 도와주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
영문학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목발 짚는 장애인이기도 한 그. 태생이 눈치가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 역시 자신이 가진 장애로부터 받는 차별에 '어쩔 수 없음'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기보단 다른 방향을 찾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p.191 "여보, 우리 영희는 문학 공부를 시켜야겠어. 이런 아이는 특수 학교 말고 일반 학교에 넣어 여러 아이들과 함께 경쟁시켜야 해. 더 큰 세상을 보야줘야 해. 그래서 크면 내 뒤를 잇게 해야지."
p.262 언제나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당당하고 '미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양심'과 성실함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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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한국엔 장애인이 많지 않다고. 어떤 엄마는 소리친다. 장애인에게 탈시설은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장애인이기에 대학원에 입학할 수 없고 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웠던 장영희 교수와 지금의 장애인들. 어린 자식의 손을 놓을 수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부모와 모른 척 외면하는 사람들, 제도, 법. 그가 태어나 교수가 되기까지의 시간과 그가 떠난 후의 지금, 장애인들이 받은 대접은 얼마나 달라졌을까(혹은 그대로일까).
한 장 한 장 천천히, 가끔은 멈춰서 읽은 책. 슥슥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다시 돌아가 곱씹던 책, 문장들. 솔직하기에 여리고 어린 글, 그래서 더 내려 앉는 글. 무거우면서도 기쁜 마음이, 그러다가도 묵직한 마음이 느리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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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만국공통어에 관한 글. 결국 우리는 언어가 아닌 눈빛과 손짓으로, 마음으로 통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