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기사(서울일보, 윤태희 기자)에서 북극곰 가족이 찍힌 사진을 봤다. 설원 위에서 잠자는 어미와 서로 뒹굴며 장난치는 새끼 북극곰 두 마리.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브라이언 매슈스’는 영하 65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를 버틴 끝에 북극곰 가족의 귀여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기사 내용 인용)북극곰은 귀엽다. 새끼 북극곰은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사람들은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북극곰은 야생동물이다. 무한도전에서 언젠가 정준하는 “북극곰은 사람을 찢어요” 라고 말했다. 그렇다. 북극곰은 귀엽지만 무시무시한 존재이기도 하다.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눈보라가 태어났다. 기후 위기 상황 속에서 눈보라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문 기사를 하나 발견한다. 신문 속 판다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하지만 눈보라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았다. 사람을 피하다 눈보라는 진흙에 뒹굴고 그 진흙을 제 몸에 덕지덕지 발라 판다 흉내를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며 좋아했다.거짓은 금방 들통 났다. 사람들은 눈보라를 만졌고 눈 주위를 칠했던 진흙이 점점 닦였다. 눈보라가 북극곰의 모습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총구를 겨눴다. 눈보라는 사람들을 피해 다시 달린다. 두 발 아닌 네 발로, 두 발 짐승을 피해 눈보라 속으로 몸을 숨긴다.동물은 사람에게 귀속된다. 사람은 고기도 먹고 풀도 먹는 존재라 다소 잔인한 방식으로 사육하고 도살한다. 남은 털로는 옷을 만들고 때론 옷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기도 한다. 지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 인간은 언제부터 지구를 제 것이라 여기게 되었나. 누군가가 환경 운동을 펼칠 때, 누군가는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누군가 동물권을 보장하라 시위할 때, 누군가는 펫샵에서 아주 작은 강아지를 산다. 구석에 놓인 길고양이 밥에 누군가는 고춧가루를 뿌리고 때론 화살을 쏘기도 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귀속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원한다. 인간이 지구를 인간만의 것이라 여기지 않길 원한다. <눈보라>는 그것들을 담고 있다. 판다에겐 환호하면서 북극곰에겐 모진 시선을 던지는 모습. 그 속에서 아이들 역시 어른들을 따라 모진 말을 뱉고 돌을 던진다. 기후 변화는 동물들의 탓이 아니다. 굳이 탓을 하자면 인간의 탓이라 하는 게 더 맞다. 부모와 아이가 <눈보라>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면 좋겠고 그럴 것이라 여긴다. 더 이상 눈보라가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길, 두 발 달린 짐승을 피해 네 발로 눈보라 속을 뛰어가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