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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ㅣ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 천진 시절 >> 이란 제목의 의미를 한 번에 옳게 유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천진 시절’이란 제목과 아기자기한 사진들로 꾸며진 책 표지를 보고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려는 소설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천진’은 우리가 보통 ‘텐진(天津)’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지역명이고
주인공 '상아'가 고향을 떠나
대도시 ‘천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회고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낯 모르는 사람의 긴 인생 이야기도 불편하지 않게 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담담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 책을 끝까지 한번에 읽을 수 있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거북했던 ‘상아(嫦娥)’라는 이름, 천진으로의 취직을 위한 무와의 갑작스런 약혼과 천진으로의 이주, 그리고 그와의 동거가 마뜩지 않고 상황에 끌려가는 느낌이 들지만 상아는 그에 적응해서 잘 살아간다. 그러나 개방과 자본주의 물결이 넘치던 1990년대 천진의 변화에 적응하며 상아는 무와 이별하고 직장을 옮긴다. 그 후 설 연휴로 돌아온 고향에서 늘 거북했던 이름 ‘상아(嫦娥)’를 ‘상아(尙雅)’로 바꾸며 천진으로 돌아가지 않는 결정을 내리며, 상아의 ‘천진 시절’은 끝이 난다.
상아나 정숙 뿐 아니라 나에게도 있었던 '천진시절'은 모든 것이 미숙한 청춘 시절이었다.
사랑, 아픔, 실패를 겪으며 생기는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혼란한 감정들.
그래서 불안하고 서툴렀던 그 시절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남지만,
상화가 정숙에게 건넨
‘언니, 그냥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란 말처럼
'그냥 그렇게 된 시절이었다. '고 담담하게 추억하고, 새로운 오늘을 살아내면 되는 거다.
작가 ‘금희’는 길링성 출신의 조선족이다. 그 덕에 담담한 문체 속, 툭툭 튀어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어휘나 표현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불볕더위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훈이를 주렁주렁 대동하고 헐금씨금 도착한 금성이네 아파트에서.....(10쪽)
‘장조림에 넣기 맞춤한 민들레를 캤다’(23쪽)
‘하들하들하고 고소한 두부는.....’(28쪽)
‘나는 왠지 더욱 눈이 올롱해졌다.’(51쪽)
‘무군은 나를 알아보았다는 작은 자부심에 즐거워하며 시물시물 웃었지만...’(64쪽)
‘나는 발밤발밤 방으로 들어왔다.’(74쪽)
‘동편의 넓은 황무지에는 갓 일떠서기 시작한 명품 아파트 단지들이 숨어 있었고....’(87쪽)
‘사시장철 그녀가 앉아 있던 작은 사무책장도 기억난다.’(109쪽)
‘그러나 절정으로 톺아오르기 위한 몸부림이.....’(143쪽)
‘크고 둥그런 눈을 슴벅거리며.....’(178쪽)
발음도 어려운 ‘톺아오르기’를 비롯한 ‘하들하들’ ‘발밤발밤’ ‘올롱’ ‘시물시물’ ‘헐금씨금’ 생경하지만, 어떤 뜻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맛깔나는 표현들이다.
또한, 상아의 고향 동네에서의 일상, 그리고 남동생의 혼인 과정에서 우리와 비슷하거나 다른 생활 모습을 찾아 보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