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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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다. 

처음 부분은 '밝은 세계'에서 자라나며 가족의 따뜻한 사랑, 신성한 생활을 누렸던 어린 싱클레어가 외부세계에서 '악'과 마주하며 가치관의 충돌을 마주하는 파트다. 누구나 어려서부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학습하며 자란다. 매주 기도를 올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싱클레어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내면에 깨끗하고 맑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소한 거짓말부터 시작해 배신까지, 스스로의 내면에 '악'이 실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악을 좇는 본능은 어디서 자라났는가? 양심적이고 깨끗한 생활을 해왔다고 믿어왔는데 어디선가 지독한 이기심이 우리의 눈앞을 가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싱클레어의 종교에서는 다른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악한 것을 배척하고 선한 것을 추구하도록 가르쳤고, 싱클레어는 수동적으로 그를 경건하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어린 싱클레어는 그를 배반하여 어둠의 세계에서 위대해지고 싶어했고, '데미안'이라는 신비한 소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하게 된다. 


+ 나는 데미안과 내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바로 사람들을 분석하려 하고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 그것이다. 바로 그 통찰력, 또한 부동의 자세로 자신의 내면에 깊게 몰입하는 그 자세. 나는 현재 어떠한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이기심과 욕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자기애, 나태함, 탐욕, 자만심. 외려 그것을 표현하고, 당당히 드러낸다. 그러한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감정을 '악한 것'이라 여기고 부끄럽게 생각해 감추어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이기심과 달콤한 욕망을 내면에 깊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으므로 나의 욕구를 창피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나는 사회가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길 뿐이다. 


이교도적인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부정하는듯한 그의 생각에 충격을 받고 멀리하려 하지만, 대화를 해볼수록 그는 데미안과 자신의 생각이 닮아 있음을 깨달아 '악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데미안만의 가치관을 닮아가게 된다. 싱클레어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신선한 유혹에 발을 뻗치고 싶어하기도 했을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데미안과 헤어지게 된 싱클레어는 모든 성스러운 행동거지에 회의감을 느끼고 '악'에 강하게 이끌려 완전히 타락한 삶을 즐긴다. 



그러던 도중 싱클레어는 어떤 소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늘씬하고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를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라고 부른다. 싱클레어는 그녀의 그림을 그려보고 시도하는데, 마침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완성하고 몇 날 며칠이나 그 그림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 그 초상은 베아트리체가 아닌 데미안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싱클레어의 내면세계에 데미안이 얼마나 깊게 관여했는지 드러나는데, 그에 따라 싱클레어는 자신이 살던 '밝은 세계'로 복귀한다. 그는 데미안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 데미안과 함께 바라보았던 문장에 그려진 새를 떠올린다. 싱클레어는 이또한 그림으로 그려 내어 데미안의 옛날 주소로 전송하는데, 얼마 후 데미안으로부터의 답장 쪽지가 도착하고 이것으로 인해 그는 신과 동시에 악마인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후 뜻을 함께하는 두 사람을 만나는 등 싱클레어는 자신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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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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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으로도, 전자책으로도 구매한 책이다. 정말 가장 좋아한다. 기숙사 방에 갖다두고 잠자기 전마다 항상 읽고 또 읽는, 내 분신과도 같은 책. 

페르난두 페소아는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천성적으로 가진 음울함부터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까지 모두 언어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게 경이롭다. 그에게 귀속된 내면세계의 서술을 읽다 보면,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사람이지만 어찌도 나와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정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전생같은 걸 믿는 편은 아니지만 정말 어쩌면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나는 그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 우리 인간은 모두 비슷비슷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나는 내 내면세계를 이렇게나 세밀하게 묘사해준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고 또 행복할 뿐이다. 아주 선명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성찰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었다.


"나는 나 자신만큼이 아니라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p.84


그런데 그가 자꾸 사용하는 '형이상학적이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대충 어떤 뉘앙스인지 짐작은 가지만 잘 모르겠다. 그 외에도 추상적인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걸 보면 나처럼 상상 속에서 사는 사람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이 책을 계기로 인문서적의 맛을 알게된 것 같다. 지식을 쌓는 책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서양고전이 그렇듯이,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에 좋다. 문학만의 매력이다.


"고결한 이성의 힘으로 나는, 절대적 외계라는 진실을 사랑한다." -p. 127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페소아가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페소아는 많은 영역에 대해 조금은 허무주의적인 이야기를 내뱉는다. 가령,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을 때, 동일한 시간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과연 실제로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 내가 작년에 초끈이론에 한창 빠져있었을 때, 시간의 관념을 스스로 다시 써 보면서 매우 유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겉보기엔 마치 지구에서 5억 광년 떨어진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동시대에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5억 광년 전의 별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실은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라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2118년에 살고 있지만, 어떠한 이유로 사건을 인식하는 데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치 2018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인간들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관념, 현재 존재하는 '시각'이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시간은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시간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인류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데까지만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연대표를 그리기도 하고 시간이란 24시간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시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 시간은 그렇게 2차원적인 존재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페소아도 이런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인데 그는 절대로 무궁무진한 진리라는 존재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다. 나와 같이 혼란을 느끼기는 하지만, 시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점은 정말 본받고 싶다.


추상적 관념을 가지고 노는 그의 행동거지는 정말로 나하고 많이 닮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내가 그의 47번째 자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는데, 이 책에도 그렇게 했다가는... 차라리 형광펜 잉크가 가득 채워진 대야에 책을 적시는 편이 빠를 것 같다. 10월 초에 페르난두 페소아의 다른 책이 두 권 출판되었던데,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당연하지. 내 책을 내가 산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페소아, 위대한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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