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 - 장정희 장편소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장정희 지음 / 강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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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내게 시는 재앙이라고 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내게 오로지 나의 존재 증명이자 여자로서, 서녀로서, 소실로서 살아야 했던 내 생의 전부를 내건 발언이고 항변이고 싸움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그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지요.

p.278

 

삶의 이러저러한 곤궁함으로 인해 옥봉을 맘껏 만나기가 수월치는 않았다. 그런데도 지친 밤 옥봉의 삶을 끌어안고 침잠해 가기를 여러 날이 지났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유약한 나는 옥봉의 치열하고 비참하고 서글픈 삶을 바라보는 일이 아프고 아파서 옥봉을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와 너무도 닮은 그 시대의 여성이 지워진 시대를 참혹하게 살다 간 옥봉의 삶이 내 삶을 관통하며 명치에 아릿한 통증을 느끼기도 수차례.

 

14년 전, 이혼녀 딱지를 달고 가부장적 남성 권력에 휘말리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을 때, 모두가 나쁜 여자, 나쁜 엄마라고 손가락질해댔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삶을,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서, 더는 아프기 싫어서 숱한 상처와 오욕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써대고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애당초 생에 만약, 은 없을 터였다. 그러니 너도, 나도, 아무도 생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 아닌가. 너와 나의 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굴레에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살아가는 것, 그게 생인 것이다.

p.307

 

난 여전히 문학이 뭔지 시가 뭔지 모른다. 문학을 배운 적도 시를 배우려고 애를 쓴 적도 없다. 내가 감히 글을 쓰며 살게 되리라고는 정말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굴레에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살아가는 것,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 길 위에 서 있을 뿐, 이게 생이 아니던가.

 

그저 어느 날부터인가 홀로 떠드는 내밀한 일기가 수필이 되고 수필이 어느새 시가 되어 세상 모든 아픔을 씻기는 빗방울처럼 내렸다. 아프지 않기 위해 썼던 수많은 밤 들이 내 가슴에 오롯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놀랍게도 그 시들이 노래가 되어 다시 내게로 왔다. 물론 옥봉처럼 모두를 놀라게 하는 시를 쓰지는 못했으나 그녀의 육신은 죽고 나는 시절 속에 살아남았다.

 

서녀로서 소실로서 살아가다 끝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할지라도 그녀의 시는 불온한 세상에 맞서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며 생의 모든 것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오래도록 깊은 슬픔에 젖어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참혹했던 그 시절에 오롯이 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한 여인을.

 

*가을, 가을 향기가 그윽할 때 옥봉의 삶과 조우하기를 . . .

 

#백만년만에쓰는책감상평

#옥봉 #장정희장편소설

#도서출판강

애당초 생에 만약, 은 없을 터였다. 그러니 너도, 나도, 아무도 생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 아닌가. 너와 나의 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굴레에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살아가는 것, 그게 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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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살아나라!
고영완 지음, 김도아 그림 / 노란돼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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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고 있는 동화의 주인공 아이의 마음에도 용기를 주고 싶네요! 장바구니에 쏙 넣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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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의 생존법 바일라 13
한수언 지음 / 서유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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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고사리 생존법이라...게다가 생활 밀착형 판타지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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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삶은 처음이라
김영임 지음 / 리더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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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한여사는 절뚝이는 다리로 당뇨 합병증으로 투석을 받으며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버지를 돌보며 아들의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을 거들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꽤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미워했고 그리워했다. 아들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가 닿지 못했던 그리움은 상처가 되고 결핍이 되어 모든 관계를 삐걱대게 했다. 그랬다.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과 차별하고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그녀의 이름은 엄마였고, 가부장을 등에 엎은 명예 여성이었다. 이혼 후, 이러저러한 삶의 질곡을 겪으며 그녀 나이의 반 만큼의 새치가 생겨난 지금, 그녀를 더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녀의 안타깝고 애달픈 삶이 아파서 도저히 “내게 왜 그랬어요!”라고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늙고 쇄한 그녀가 내 야윈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쓸모 없어진 자궁이 속절없이 아팠다. 소설 속 화자는 남편이 첫 남자였음에도 처녀막이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리며 이혼을 하고 첫 결혼과는 다른 삶을 꿈꾸며 재혼했지만, 역시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막강한 틀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허나 그녀의 딸은 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그닥 변한 것 같지 않지만, 가부장제에 속박된 삶을 거부하고 자유하며 오롯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딸을 보며 두 번의 이혼에도 벗어날 수 없었던 내제화된 가부장제 안의 그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불운한 이 땅에 엄마라는 이름의  딸들에게 보내는 긴긴 다정한 편지가 될 것이다. 

내 딸이 엄마라는 탯줄을 저 스스로 끊고 세상 모든 권위를 넘어서서 저 넓은 세상으로 오롯이 훨훨 날아길 바라고 바라는 봄날, 희망의 씨앗 하나 가슴에 품으며 소설을 덮는다. 딸이라는 이유로 나를 구박했던 엄마도, 이혼한 나도, 학교를 그만 둔 딸도 괜찮다. 엄마도 나도 그리고 딸도 여자의 삶은 처음이니까.

#여자의삶은처음이라 #김영임소설
#도서출판리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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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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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느로의 글은 메타포없이도 내 맘을 흔든다. 참으로 기묘한 글이다. 어서 만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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