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삶은 처음이라
김영임 지음 / 리더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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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한여사는 절뚝이는 다리로 당뇨 합병증으로 투석을 받으며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버지를 돌보며 아들의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을 거들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꽤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미워했고 그리워했다. 아들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가 닿지 못했던 그리움은 상처가 되고 결핍이 되어 모든 관계를 삐걱대게 했다. 그랬다.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과 차별하고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그녀의 이름은 엄마였고, 가부장을 등에 엎은 명예 여성이었다. 이혼 후, 이러저러한 삶의 질곡을 겪으며 그녀 나이의 반 만큼의 새치가 생겨난 지금, 그녀를 더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녀의 안타깝고 애달픈 삶이 아파서 도저히 “내게 왜 그랬어요!”라고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늙고 쇄한 그녀가 내 야윈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쓸모 없어진 자궁이 속절없이 아팠다. 소설 속 화자는 남편이 첫 남자였음에도 처녀막이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리며 이혼을 하고 첫 결혼과는 다른 삶을 꿈꾸며 재혼했지만, 역시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막강한 틀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허나 그녀의 딸은 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그닥 변한 것 같지 않지만, 가부장제에 속박된 삶을 거부하고 자유하며 오롯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딸을 보며 두 번의 이혼에도 벗어날 수 없었던 내제화된 가부장제 안의 그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불운한 이 땅에 엄마라는 이름의  딸들에게 보내는 긴긴 다정한 편지가 될 것이다. 

내 딸이 엄마라는 탯줄을 저 스스로 끊고 세상 모든 권위를 넘어서서 저 넓은 세상으로 오롯이 훨훨 날아길 바라고 바라는 봄날, 희망의 씨앗 하나 가슴에 품으며 소설을 덮는다. 딸이라는 이유로 나를 구박했던 엄마도, 이혼한 나도, 학교를 그만 둔 딸도 괜찮다. 엄마도 나도 그리고 딸도 여자의 삶은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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