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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문도 - 제1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94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낯설었다.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바로 여기,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익숙한 공간이 아닌 생경하고 이질적인 세계로 빠져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낯선 어떤 곳이거나 머나먼 이국땅에 위태롭게 선 외로운 아이들과 아이들을 보듬는 가여운 사람들의 슬프고 기묘한 이야기가 무덤덤하게 펼쳐지는 동안, 나는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나무이거나 기찻길이거나 라벤더밭처럼 아득한 풍경이 되어 저마다 다른 아홉 빛깔 이야기에 조용히 마음을 기울였다.
스페인어로 '세상 어딘가’를 의미하는 델 문도(Del Mundo). 델문도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겁많은 나를 일상을 넘어선 낯선 세상 어딘가로 데려다 놓는 데 성공했지만, 소외되고 아픈 아이들과 얽힌 이웃들의 아픈 삶으로 인해 슬픔에 잠기게 했다. 하지만, 다정한 작가는 마지막 단편에서 기어이 희망을 노래하며 그의 바람처럼 위안을 준다. 드디어 수도원을 떠나는 아이, 그리고 유일한 친구였던 아이를 떠나보내는 아리엘 수사.
"세상을 보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루이엘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시튀스테쿰"
p.256
아마도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시튀스테쿰"은 아리엘과 아이가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정한 암호였다. 그것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빌어주는 말이었고 '너에게도 힘이 깃들기를' 이것이 암호의 뜻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디로든 떠나지 못한 채로 있지만 <시튀스테쿰>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나에게도 힘이 깃들기를.' 그리고 힘들고 지친 당신들에게도....
아홉 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떠났거나, 떠나 있거나, 혹은 떠나려 한다. 세상 어딘가를 떠도는 누군가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여행자들이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지만 상실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혹은 죽음과 고통, 슬픔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딘가에 아직 존재하는 연민과 사랑, 기쁨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 흉포한 세상을 견디며 여전히 여행해야만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이야기들이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