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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학교에 와서도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무척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완전히 무기력해지더라고. 그렇게 힘든 날을 보내던 중, 그날도 화장실에 가서 울었는데… 화장실 안쪽 문에 이 시가 붙어 있었던 거야.
P.164 『존경 따위 넣어둬』 / 장정희 지음
(이야기가 있는 시 3분 스피치(1) _ 울기 좋은 곳, 화장실)
내밀서재엔 머리를 써야 하는 책들이 꽤 있지만, 사이사이 마음 가는 책들이 쉼표처럼 놓여 있다.
며칠째, 얼마 전부터 머리 아픈 책을 미뤄둔 채로 읽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40년을 일하시다 정년퇴직하신 장정희 선생님의 『존경 따위 넣어둬』.
(글과 작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 작가의 사적 영역을 알고 싶지 않은데, 요샌 작가들이 SNS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여튼 작가 페친들의 모든 신간을 살 순 없다. 실질적으로 금전적 여유가 없기 때문ㅠ)
하여간 페친 장정희 선생님의 신간이 어찌어찌해서 내밀서재에 당도했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마음이 가는 대로 느릿느릿 읽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의 제자가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리다 만난 ‘시’를, 무정한 현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며칠째 속울음을 울던 내가 마주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 ‘시’나 문학은 지적 허영심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혹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슬픔의 위안일 수도 있다는 것.
문득 고교 시절, 이런 선생님 한 분만 계셨어도 덜 힘들고 덜 외롭지 않았을까? 수십 년 동안 장정희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만났던 아이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살다가, 살아내다가 가야 하는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무릎이 꺾여 울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을 때, 한 번쯤 장 선생님의 온기 그득했던 수업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그 아이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배울 때였다.
“선생님, 서정주가 친일파였다는 건 왜 얘기 안 하세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벌개진 선생님은 수업을 서둘러 마치고 나가는 길에 교무실로 나를 불러 호통을 쳤다.
“너 공부는 안 하고 대체 무슨 책을 읽고 다니는 거야?”
세월이 흘러흘러 독박 육아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했을 그 무렵, 일산 하나로마트 앞에서 우연히 그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인사를 했지만, 역시나 선생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어색하게 헤어졌던 씁쓸한 기억이.
물론 그 선생님과 지금 내 힘든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 국어 선생님이 장정희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면 우리의 재회는 어땠을까?
아마도 선생님은 나를 와락 껴안아 내 이름을 불러 주셨겠지.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겠지. 그리고 유모차에 탄 채로 징징거리던 딸아이 입에 달달한 걸 사서 넣어 주셨으려나?
이런 상상만으로도 시린 마음에 온기가 퍼졌다. 이 책은 누군가 내 찬 손에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핫팩을 슬며시 내어 준 것처럼 따스하다.
하아… 돌아보니 그 시절엔 매질로 우리를 통제하려던 폭력적인 선생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지만, 이 책은 작가가 글을 쓰는 선생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살아온 40여 년의 절절한 생의 뜨거운 고백이자 기록이기에, 언젠가 야만의 시대를 통과한 한때 힘없는 학생이었던 우리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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