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읽다가 눈물이 쏟아져서 결국 덮고 말았다. 오늘은 4,16 세월호 6주기. 부러 검은 원피스를 찾아 입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쳤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한국사회의 심연을 밝혀온 유가족의 목소리
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들을 것인가//
이혼 후, 딸 아이가 8살이 될 때까지 4년을 꼬박 새벽까지 작업을 끝내고 첫차를 타고 아이들 집으로 가서 여느 엄마처럼 분주하게 아침을 챙겨 주었다. 양쪽 집안에 이혼한 사실을 숨기고 우렁각시?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매일 볼 수 있었으니 밀려오는 피로와 쏟아지는 졸음은 견딜 만 했다. 가장 힘든 시간은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 단 한 순간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의 차를 타고 해맑던 아이들과 함께 갔던 시댁에서의 이틀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어쩌자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땐 그랬다. 너무 어렸던 아이들에게 내가 선택한 이혼을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서 자라길, 시간이 유수처럼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지는 잦은 이별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딸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무렵 아이들 아빠가 잠시 실직 상태가 되었기에 더는 일산으로 가는 첫차를 타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4년은 아이들 아빠의 종교적 이유가 가장 컸지만, 녀석들이 바빠지기도 했기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게로 왔다가 돌아갔다. 아이들을 매일 볼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기에.
그럼에도 나는 참고 기다리면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내가 찾아가면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6년 전, 아이들을 내 곁에 품을 수 없어 삶이 늘 아팠던 그때, 소중한 목숨들을 태운 세월호가 무참히 침몰할 때도 나는 그리움에 시린 가슴 움켜쥐며 컴컴한 작업실에서 누군가의 몸에 천사나 나비를 그리고 있었던가.
자식을 볼 수 없는 아픔을, 그 절절한 그리움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무리 참고 기다려도 아이가 오지 않고, 다시는 볼 수 없고, 품에 안을 수 없는,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슬픔을, 그 아픔은 나는 모른다. 나는 정녕 모르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아프기에 . .
하지만, 이 불온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 부모들의 투쟁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될 것이며, 죽기 전엔 절대로 끝나지 않을 지독한 슬픔을 마음 깊이 애도하며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이는 부끄러운 오늘,
수많은 목숨을 너무 쉬이 저버린 악인들에게 제대로 된 해명이나 사과 조차 받지 못한 너무나 억울한 죽음들이 아프고 아픈데 올해는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수 있을까?
#그날이우리의창을두드렸다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씀 #세월호의시간을건너는가족들의육성기록 #세월호는끝나지않았다. #진실을규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