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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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벨 훅스


나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고 엄마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셨다. 남자 형제사이에서 자란 나에게 성차별은 그저 일상일 따름이었다. 여자애가 어딜 함부로 돌아다니느냐고 하면서도 김장철 배추를 나르는 일부터 아버지 족발과 담배, 술심부름은 오로지 나의 몫이 되었다. 그 당시엔 아이가 가도 술 담배를 살 수가 있던 허술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말귀를 알아 들을 나이부터 독립을 할 때까지. 아니,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는 동안에도 여자답지 못하고 왜 이렇게 덜렁거리고 찬찬치 못 하냐는 엄마의 끝도 없는 잔소리였다. 같은 여자인 엄마에게 여자다움을 강요받았던 나의 성장과정은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날들이 아닐 수 없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을 그 당시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제목이나 다른 등장인물들 이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후남이'만큼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똑똑히 기억이 난다. 집안의 대들보이자 주인공이었던 최수종과 남매였던 후남이는 같은 여성이었던 엄마로부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과 구박을 당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이 거의 기억하는 걸 보면 이 땅에 '후남이’가 얼마나 많았던 것일까? 불행하게도 나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후남이라고 불리곤 했었다.


하지만 내면화된 성차별 주의를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한 인물과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냥 나의 이름은 잊은 채로 두 아이를 키우며 억척같이 살았다. 내가 철없이 선택했던 가부장은 그 철없음을 질타라도 하듯이 언어폭력을 일삼으며 가부장의 권위를 보란 듯이 행사했다. 물론 그의 폭언은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유난히도 까칠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딸아이는 젖을 물거나 잠을 자지 않는 동안에는 내내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했고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모두 경계했다. 제대로 된 잠을 거의 자 본 일이 없던 암흑 같던 시절이었다. 심장소리를 듣지 않으면 불안에 떨며 울어버리는 애를 들쳐 업고 밥을 하고 집안일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숱한 날들, 그러다 지쳐 아이 젖을 물리다 잠시 꿀잠이 들었을 때, 애들 아빠가 퇴근이라도 하면 아이와 누워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그는 무에 그리 분노했던 것인지 집에서 아이와 자빠져 잠만 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냉장고에서 시든 콩나물을 발견한 날엔 자신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엉망으로 하고 있다며 무능한 전업주부로 전락시키곤 했다.


내가 오십 가까이 삶을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은 그와의 결혼 생활을 그만두며 가부장제를 뚫고 나온 일이다. 물론 엄마로서 아이들에겐 커다란 결핍을 안겨주긴 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며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나의 다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혼 가정이 너무나 많아져서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 보편타당한 삶을 사는 그들의 눈에 인내심 없는 냉정한 엄마일 따름이었다.


이혼했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아들이 열아홉 살이 되었고 울기만 했던 딸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었다. 아이 아빠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으로 떨어져 살다가 따돌림으로 내게 온 딸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아들이 사는 일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자 작년 봄, 봇짐을 싸들고 와서 얼결에 합류하게 된 아들과 오붓한 점심을 먹다가 승리, 버닝썬, 정준영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우리는 열이 뻗쳐서 미친놈들이라고 맞장구를 쳐댔다.


남자들이란 다들 왜 그 모양이냐!”


나의 불쑥 튀어나온 말에 아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맹수처럼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자들은 다 미쳤고, 그 여자들 때문에 이 사회가 혼돈이 왔으며 자기처럼 선량한 남자들을 한남 충으로 만들어서 말도 안 되는 피해를 보고 있다며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려고 했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만 믿고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라. 책이라도 한 권 읽은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아들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며 엄마도 피해 의식으로 미쳐 간다며 남성혐오가 여성혐오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남자들은 다 그런다는 말을 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열아홉 아들에게서도 문득문득 애들 아빠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보여서 암담해졌지만, 이내 아들이 왜 저렇게 페미니즘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고민해 보았다. 우리 시대의 남자들이 받은 수혜를 지금 젊은 청년들은 받지 못했고 오히려 여성들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것들을 빼앗아 갔다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들, 남자들을 싸잡아서 이야기 한 거 미안해, 하지만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싸우려는 게 아니야. 물론 지금 너희 젊은 세대를 이렇게 만든 건 가부장제를 이어 온 조상들과 우리 어른들이 잘못이 크지. 기성세대인 엄마가 그래서 너무 미안해. 이런 세상에 너희들을 살게 해서 말이야.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거야. 엄마의 고민은 분열된 너희 청년 세대들을 어떻게 하면 서로 연대하며 살아 갈 수 있게 하느냐에 있어. 어떤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든지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어야 하니까. 그리고 네가 결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된다면 너는 이성애자니까 여성을 만나 살아야 하잖아. 다연이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서로 혐오하고 미워하면 안 되잖아.”


아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내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순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들이 아빠 집으로 가는 외진 길. 그 똑같은 길을 보고도 딸과 나는 무섭다고 느끼고 아들과 애들 아빠는 "그 길이 뭐가 무서워?”라고 말하는 이 불온한 땅에서 과연'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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