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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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저 오늘 미국으로 떠나요. 오라버니 말씀대로 의사 공부 하러 가요. 가서 오라버니 대신 공부도 실컷 할 거예요. 조선으로 돌아올 때는 꼭 좋은 의사가 되어 있을게요. 
오라버니,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제가 힘이 들 때마다, 그만 두고 싶을 때마다 제게 꼭 말씀해 주세요. '명혜야,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한다' 하고 말이에요....

p.214

명혜ㅣ김소연 장편동화 중에서

일제시대 3.1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세상이 정해 놓은 악습과 인식의 틀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가게 되는 서사가 참으로 눈물겹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소녀가 한 발 한 발 내딛는 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한 마치 타임머쉰을 타고 그 시대 그 공간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일제 시대의 묘사가 뛰어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고 세심하게 그 시대를 고증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이름없이 그저 아기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다 일본 유학중이던 명규 오라버니의 도움으로 명혜라는 이름도 얻고 시집을 가는 대신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글쎄, 여자가 좋은 집안에 시집가 평생 좋은 옷에 좋은 음식 먹으며 아들딸 많이 낳고 살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게 무에 있담."

세상에 태어나 남자들 그늘에 가려 자기 의견은 없이 숨 한 번 크게 못 쉬고 산다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그저 한이라고 했던 명혜 어머니의 말이다. 일제 구한말 시대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기도 했기에 읽는 내내 명치 끝이 아려왔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타당한 근거없이 포기 되어야 마땅했던 일, 여자가 감히 어디서 말 대꾸를 하느냐고 따져 묻던 물음들이 떠올라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분노가 일렁이기도 했다. 나도 젊은시절 독립해서 뒤늦게 내 힘으로 대학을 오기로 갔던 것은 순전히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대학 떨어졌음 끝이지. 기집애가 뭔 대학을 간다고 제수를 한다고 그래, 시집 잘 가면 그만이지"

명혜는 분명 구시대의 인물이었고 허구의 인물이었지만,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다는 달은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정복했고, 강대국들의 전쟁은 칼과 총이 아닌 핵 전쟁이 된지 오래이고,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어 인간을 이기는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름없는 아기와 갓난이와 가난한 연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기만 하다. 

엄했던 아버지보다 엄마나 여동생 명선이의 시선이 더 아팠던 이유는 오히려 같은 여성이면서도 그녀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것이 왠지 서운했고 그 서운함이 유독 구 시대의 유물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여성이 아닌 명규 오라버니가 명혜가 가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은 작가의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그래! 여성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은 누군가 정해 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 누가 뭐라해도 나만의 길을 가야지...

#역사동화는읽을수록매력적이네
#이건어른들이어꼭읽어야할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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