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정리 편지 ㅣ 배유안 장편동화

한글날인 오늘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바람에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최고의 유산, 우리 글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얼마 전에 눈물을 훔치며 읽어 내렸던 "초정리 편지"가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그리운 나의 할매가 생각이 났다.
두메산골에서 홀로 사셨던 할매에게 고사리손으로 꼭꼭 눌러 편지를 썼던 어린 시절이 초정리 편지와 오버랩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교회에 매우 열심히 다니고 있던 꼬마였던지라, 편지 끝에는 늘 “할머니,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썼는데, 세상에나! 울 할매는 살아 계시는 내내 불교 신자셨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 험한 세월을 홀로 지내시며 전방(구멍가게)을 하셨던 할매는 시골 동네에서 꼬장꼬장한 노인네로, 싸움닭으로 유명 하셨다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동네 사람들과 외상값 때문에 자주 언성을 높이시며 다투셨기 때문일 것이다. 방학 때 할매 집에 가면 할매가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으셨던 잔정이 없으셨던 할매셨지만, 손녀인 나에게는 매우 유하셨고 어떤 손주보다 나를 매우 예뻐라 하셨다. 그것은 필시 나의 편지 때문일 거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할매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에 갔다가 동네 분에게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가 있다.

공주야, 네가 어릴 때 할매에게 보낸 편지 내가 많이 읽어 주었어
"네? 진짜요? 울 할매가 한글을 모르셨어요?"
까막눈이셨지~ 너그 할매가 공주 니 한테 온 편지 읽어주면 얼마나 좋아했다고!
“아! 
예수 믿고 어쩌구 하는 건 빼고 읽어줬지, 너그 할매가 보살인데 그걸 어케 읽어주냐 
"아이고야, 정말 잘 하셨네요! 참 고맙습니다! 아재”

나는 울 할매가 글을 모르시는지 할매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알았다. 할매의 답장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원망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는데 ㅠ 평생토록 글을 모르시고 사셨던 할매의 고단한 삶이 참 안타까웠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래서 사다 드린 노트에 외상값을 적지 못하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자꾸만 따금거린다.

"초정리 편지"는 가난한 석수장이 아들 장운이가 나무하러 갔다가 우연히 빨간 눈 할아버지를 만나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쉬운 우리 글을 깨우치고 가난 때문에 남의 집 종살이를 하러 간 누이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실로 감동의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눈치 빠른 독자들은 그 당시 지배층인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뇌하는 빨간 눈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아차릴 테지만, 그런데도 결코 진부하지 않으며 그 시대의 어지러운 시대상과 글을 몰라 억울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녹록지 않은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소재로 하여 흥미진진하게 여러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들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려 리듬을 타듯이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전개되는 장운이의 눈부신 성장 스토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깊은 울림은 어린이 대상 동화라고 가벼이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시려 만든 쉽고도 아름다운 우리 글이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오늘은 그 위대한 한글의 날이렷다. 각종 SNS의 발달로 막말 행렬과 아무 말 대잔치, 그리고 줄임말과 은어들이 한글을 훼손시키는 것을 최신 유행이라는 핑계와 변명들로 너그럽게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머리를 써서 뭘 다시 만들라는 것도 아닌데, 이미 오래전에 피땀 흘려 만들어 놓으신 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한글을 만드신 그분의 뜻을 받들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 글을 좀 더 깊이 아끼고 사랑하자고 다짐하는 가을밤이 깊어만 가고 있다.

#조금늦은한글날특집독후감상평
#한글을사랑합시다
#줄임말이나은어는정말싫어요
#동화는어른들이먼저읽어야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