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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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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높이와 깊이

나는 높아지고 싶었다. 삶의 밑바닥에 등을 맞댄 채 눅눅한 습기에 젖어 우울의 깊이가 깊어 질수록 새털처럼 가벼이 날아올라 하늘과 가까워지기를 바랐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 가까이 높아져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우러러볼수록 그들은 나를 조롱했고 기만했으며 보이지 않는 가시로 무자비하게 찔러대곤 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비뚤어진 자의식이며 열등감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높이는 원래부터 주어졌거나, 피나는 노력으로 가져진 것이었다.

하지만 높이만 가지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나 또한 보여지는 것만 믿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높이만을 탐닉하며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갈 때에는 시시때때로 불안감과 무력감 사이를 넘나들며 시들어 버린 꽃처럼 시름시름 앓았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눈을 떠야하고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삶이 죽고 싶을 만큼 끔찍했다. 그렇게 생의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악몽같은 시간들을 글을 쓰며 견뎠다. 그것은 나만의 언어였고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은 암흑 같았지만, 어둠 속에서 발가벗은 나의 자아와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존을 가지지 못한 채 날 선 자존심만으로 지난한 삶을 연명해 가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상과 화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삶의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진리는 바로, 깊이를 가지지 못한 높이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깊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무처럼 살고 싶고,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곤 했다. 나무의 높이는 깊이가 없이는 불가능하며, 뿌리를 깊숙이 내리지 못한 나무는 오래 서 있지 못한다. 나무는 자신의 높이를 위해 다른 나무의 가지를 결코 해하는 법이 없으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상에서는 껴안을 수 없으나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깊숙이 서로를 껴안는다. 이것이 나무의 삶이며 나무의 사랑법이다. 

어쩌면 아마도 어렵사리 그 누군가를 만나도 채워지지 않았던 공허함은 깊이에 대한 목마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높이를 가진 사람은 많았으나 견고한 깊이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었다. 나의 높이만 보려했던 얄팍한 이들은 여린 나뭇잎처럼 얕은 바람에도 쉬이 떨어져 나가거나 냉정하게 가지를 잘라내어야 했다. 숱한 비바람을 이겨낸 나무가 저 스스로 나이테를 그리며 뿌리를 더 깊숙이 내리듯이 나도 조금씩 천천히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고마운 오늘의 나는 생애 마지막 사랑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랑을 하리라고, 그리하여 높이가 아닌 깊이를 열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깊이를 갖고 싶다면 높이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며 묵묵히 걸어가면 돼. 깊이를 갖는다는 건 자신의 가능성을 긍정하며 어둠의 시간을 견디겠다는 뜻이니까.... 나도 확신할 순 없지만 실패와 치욕을 통해 우리는 깊이를 배우는 것인지도 몰라...." 
p.66 [위로 | 이철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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