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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 교양인이 되기 위한 내 생애 첫 인문학
박홍순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른 계기
'그래, 인문학이야!' 작정하며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적은 없다.
검은 목폴라에 청바지를 입은 살짝 대머리 천재가 아이패드2 발표회에서 씨익 웃으며,
"애플의 DNA엔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가 있다, 기술은 교양 과목(Liberal arts)와 결혼하여 우리 가슴을 노래하게 한다" 라고 하기 전까진.
그 후 교양 과목중 인문학이 부각되었고,
이 천재의 족적을 조금이라도 쫓을 수 있을까 몰아치는 '인문학 열풍'에 올라 타기 위해 닻을 이리 저리 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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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근간이 비판과 성찰이라지만,
난 인문학이 줄 수 있는 효용만 골라 먹고 싶었다.
'이 양반아 제대로 공부해'라고 한다면,
난 이런 핑계를 준비한다.
천재 철학자라 불린 비트겐슈타인이가 말하길 "철학을 공부해 얻는 효용이 일상 생활의 중요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런거야.
뜨끔,
물론 그 효용이 내가 바라는 얄팍한 효용은 아니다.
좀 더 고결한 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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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인문학'이란 글자가 콕 박혀 있는 책은 여러모로 편하다.
문학, 역사,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루한 '비판과 성찰' 요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론만 쏙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입문서는 길 잃지 말라고 인문학을 아우로는 지도도 보여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름을 외우고 있을 필요도,
<고도(Godot)>를 기다릴 필요도,
<인간의 조건>을 다 갖출 필요도 없다.
그냥 줄줄이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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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자
책은 인생 전반을 펼치고 곳곳에 인문학 안내판을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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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상상력이 인문학의 첫걸음이다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들어 볼 수 있는 장이다.
인문학이 주는 효용 그건 상상력이라 한다.
스티브 잡스도 기술과 인문학의 상상력 결합을 강조하지 않았나.
상상력의 중요성과 더불어 방해하는 적을 소비 중독, 합리성 중독, 미디어 중독으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자,
인문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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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인간 보다 나!
나 부터 알아보자.
많이 들어본 '너 자신을 알라'의 실체와 마주한다.
영원한 의문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성선설, 성악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틀이 다를 것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은 영화 <인셉션>을 통해 알아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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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
인간의 시작 그리고 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존재에 대한 물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질문을 따라 가자.
행복을 방해하는 우울과 광기에 대해서도 살펴 본다.
그런 후,
그 유명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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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관계 안의 인간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이다.
가장 덜 철학적인 이야기 때문일 터.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 교육, 남녀 차별 등.
특히 당시 프랑스 육아 바이블인 루소가 쓴 <에밀>에서 최신유행 프랑스 육아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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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돈과 일 그리고 여가
직장인 머릿속 검색어 10위 안에 차지할 돈과 일 그리고 여가.
세 가지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소명의식,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가져갈지 결정할 것이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일화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난 이 일화로 죄책감 없이 조금 막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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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라는 사명감에 불타는 영국인은 나무에서 배짱이 마냥 늘어저 자는 원주민을 만난다.
"너는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느냐? 넌 정말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냐?"
"아이고 나리. 그럼 제가 대체 이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낮이니까 일을 하러 가야지."
"왜요? 대체 왜?"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니냐!"
원주민은 의아해하며,
"근데 대체 왜 돈을 벌어야 하죠?"
"당연히 여유롭게 휴식도 취하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지."
그러자 원주민은 몸시 불쾌하고 분한 듯 다음과 같이 소리치며 다시 돌아누웠다.
"하지만 그게 바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잖아요."
P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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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제목 그대로 충실한 책이다.
'나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목차를 훑어 보면 알 수 있듯,
입문자를 위해 생활 밀착형 인문학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내심 지루하길 바라기도 했다.
이것은 입문서고 입문서가 지루하다면 난 인문학 흰 띠가 아닐 테니.
그런 지적 허영을 느끼고 싶었다만,
지루하지 않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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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리 과정을 못 본체 펼쳐진 요리만 맞이한 느낌의 책이다.
작가가 자신이 인문학을 통해 어떻게 삶의 방향을 보정 했는지 궁금한데,
하나의 나무를 통해 숲을 이야기 하기 보단,
숲에 대한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 하는 느낌이다.
작가가 내린 결론은 소개한다.
인문학 초심자는 고수가 되는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인문학을 만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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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사고를 당할 뻔한 난폭 운전자는 '나쁜 운전자는 나쁜 운전자를 만나기 전 까지 안전하다'라는 <위대한 개스비>의 글귀에 운전 습관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검은시대, 불의만 있고 공분은 없는 시대'에 분노하며 국가에 불출할 수 있다.
작가는 개인 경험에서 얻는 인문학적 직관을 공유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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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인간 본성의 법칙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를 무렵,
예기치 않는 일에 슬픔과 분노가 뒤범벅된 감정으로 책을 덮었었다.
희망을 가지고 뉴스를 보던 중 황호택 칼럼에서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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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이등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선장의 지시에 따라 여성과 어린이들만 구명보트에 태웠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바다의 법칙이냐”는 질문에 이등항해사는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구명정에 올라탄 남자들에게 “비겁자들”이라고 욕하며 총을 들이대고 위협해 내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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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이 당연히 체화되어 있어야 할 '인간 본성의 법칙'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