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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평점 :
품절
카뮈의 <이방인>이후 한달만에 굉장히 좋은 책을 만났다. 읽을 때도 좋고, 읽고 나서 두고두고 보기도 좋고, 선물하기도 좋고, 암튼 좋은 책 -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이 산문집은 작자가 죽은 후에 형되는 사람이 편집한 것이다. 크게 여행기와 편지 그리고 일기, 소설, 국내문학 관련 신문기사로 되어있다.
1부의 얼마되지 않은 글들은 기형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극명하게 알려준다. 삶을 정말로 고민했고, 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하지만, 글은 어려워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여기에 정확히 서술을 할 수는 없다. 한 페이지를 읽어도 머리는 툰탁한 것으로 꽉차게 된다. 그래도, 작자의 유일한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입>보다도 이해가 되어서 좋았다. 작은 기쁨이랄까. 소설은 단편이었고, 작자 같은 소설이었다(이 짧은 표현이 가장 적절한듯하다). 그럼 도대체 <기형도다운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단편 [환상일지]에 보면 그는 C읍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1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곳 다방에 갔다가 여자를 만나 그녀와 여인숙으로 가고, 섹스없는 밤을 지내고, 다음 서울로 간다. 친구는 약속하고 2달 후에 죽었는데... [미로]에서 종합병원은 복잡한 행정과 불진철한 의사 그리고 무관심, 치유되지 못하는 장소가 되어 하나의 거대한 미로가 된다... 이런 작은 표현에 기형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간략히 표현해 보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기형도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기형도를 접하면, 시나 소설이나 글이나... 모두 삶의 거대한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작은 것도 거대해 진다. 삶 - 죽음 - 권태 - 여행 - 나뭇잎 - 도시 - 우울 - 고독... 도대체 그는 80년대를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글을 남겨 놓은 걸까? 그리고, 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갑자기 젊음이 부담스럽다. 버겁다. 좀더 나이를 먹어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았으면 좋겠다. 삶에 완숙한 테크닉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