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지마 교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엔케이컨텐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지증을 다룬 작품은 간병하는 가족의 어려움을 그린 것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겪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도 일상에 가득했습니다. 인지증을 앓던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소설로 따뜻하게 담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카지마 교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일상을 따뜻하게 담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는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구립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공립 도서관 관장까지 역임한 히가시 쇼헤이. 수십 년간 같은 곳에서 열리는 동창회 장소를 찾지 못해 돌아온 어느 날부터 시작된 그의 인지증( 일본에서는 치매를 인지증으로 부른다)은 그 후 10년의 투병 기간을 거쳐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그의 아내 요코. 본인도후기 고령자(65~74세를 전기 고령자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라 한다)이면서 남편을 혼자 힘으로 헌신적으로 간병한다. 망막박리 증세로 수술과 입원을 하는 중에도 남편의 간병을 걱정하고, 퇴원 후 본인이 자택 간병을 계속할 생각이다.


쇼헤이와 요코의 세 딸, 마리와 나나 후미. 남편과 두 아들과 미국 생활 중인 마리, 미혼이며 일에 바쁜 막내 후미를 대신해 둘째 딸 나나가 부모 집을 오가며 자식 노릇을 하고 있다. 아들 하나를 키우며 친정집 근처에 살고 있지만, 소설 말미에 시어머니와 합가하며 둘째를 임신한다.


요코 혼자 쇼헤이의 간병을 도맡다가 요코의 눈 수술 때문에 딸들이 아버지의 간병을 맡게 되고, 엄마의 퇴원 후 더 이상의 노노 간병이 어려움을 예상해 쇼헤이를 위한 시설을 알아본다. 요코가 수술한 병원에 입원했던 쇼헤이는 아내와 함께 퇴원하고, 일주일간 집에 머물다 재입원 후 한 해의 마지막 날 숨을 거둔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

간추리자면 별게 없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함부로 단정 짓기엔 매몰차다 할 수 있겠지만, 3년간 시아버지를 자택 간병해 본 나로서는 10년이라는 그 긴 시간이 아플 뿐, 간병 과정의 어려움이나 힘듦이 새롭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다가왔던 몇 가지.

쇼헤이에 대한 요코의 헌신적인 사랑은 눈물겹고 아름다웠다.

내가 모르는 더 깊고 진한 노년의 사랑이 숱하게 많겠지만, 요코처럼 할 자신 없는 나로서는 그저 대단해 보일뿐이었다.

시아버지가 3년간 알코올성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요양병원의 시설이나 안전이 믿음이 가지 않던 시기였기에 6개월간의 병원 생활 후 집에서, 출퇴근하는 간병인을 두고 자택 간병을 했다. 맞벌이였고 주말부부였고 아들은 초등학생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들 대단하다고 힘들었겠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안다.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보냈다. 매일 아침 아버님 배에 인슐린 주사를 놓고 출근을 했는데 바늘 자국이 많아 마음 아팠던 기억, 살이 빠져 너무 말라 안쓰러웠던 기억, 기저귀를 자꾸 찢어서 가죽 장갑을 끼웠던 모습 등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들 둘 딸 하나, 아끼던 손자도 하나 있는데 임종은 며느리 혼자 지켰으니 마지막 가시는 길이 외롭진 않으셨을까 생각하면 죄송할 뿐이다. 기억도 정신도 흐려진지 오래되었는데 마지막 하신 "내 다 안다~ 수고했다" 그 말씀이 얼마나 또렷했는지는 나만 아는 일이다.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보냈던 시간들이지만 다시 돌아가 똑같이 살아보라면, 이제는 자신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18년 기준 27%라 한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은 당연히 인지증 노인이 많고, 그로 인해 TV에서도 인지증 관련 프로그램이 비중 있게 편성되고 인지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 12월 기준 15.48%, 6~7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 어른이라는 뜻이다.

2050년이면 일본에 이어 노인 인구 비율 세계 2위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고 한다.

신경 쓰고 챙겨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노인 관련 문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데이 서비스(오전 9시 반~오후 5시 반), 취침 간병사, 아침 간병사, 주 1회 방문목욕, 월 1회 방문진료, 마사지와 보행훈련, 주 1회 오후 두 시간 돌봄 서비스, 24시간 긴급 서비스. 그리고 개별 관리하는 케어매니저까지.

조금씩, 천천히 안녕

쇼헤이처럼 자택 간병하는 환자들이 제공받는 의료 서비스들이다.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소설을 읽으며 관심이 가는 부분은 노인 요양 시설들이었다.

나나와 후미가 요양 시설 알선 상담원과 함께 아버지를 위해 적당한 시설을 찾아가며 상담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시설이나 시스템들이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입주금과 이용료에 따라 시설의 차이는 있지만 앞으로 점점 보편화될 시설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가장 고급진 시설의 스태프가 말한 QOL은 어쩌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객님 한 분 한 분의 QOL, 퀄리티 오브 라이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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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분야에서 이 단어는 안티 연명치료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는 단어의 본래 의미, 즉 생활의 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무대를 자기다운 방식으로 즐기며 완성하길 바라는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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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1 시설 매니저의 말


본인이 생각하는 QOL 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QOL은 저마다 다르고, 본인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바뀝니다. 본인이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가족이 어떻게 해드리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p293. 요양 시설 알선 상담원의 말



나의 QOL은 무엇일까? 와 더불어 Well-being 보다 Well-dying을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의도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 생각한 이유는 이 책이 쇼헤이가 쓴 것도 아니고 요코가 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따뜻하다고 느꼈던 그 일상이 쇼헤이와 요쿄에게도 따뜻했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부모가 있거나,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위해 한번쯤은 읽고 생각해 볼만한 소설이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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