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주 민주 항쟁 40주년에, 광주를 읽다.

저자가 느낌이나 감정, 평가 등을 자제하고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인물과 인물의 행동을 통해 독자의 판단을 받게 한 의도를 존중하여, 나 또한 최대한 감정에 빠지지 않는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읽기 전의 걱정이나 부담에 비해 소설은 술술 읽히고 잘 넘어갔다. <광주일보>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이라 하니 연재소설이 지녀야 할 덕목을 잘 갖춘 편이다.

작가의 말 -횃불이 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80년 5월을 함께 하지 못한 부채의식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몇 십 년 동안 기억 속에 밀어놓고 소환해내지 못하던 이야기들을 이제서야 꺼내는 이유는, 경험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더 늦기 전에 80년 5월의 광주 역사를 전해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자책과 함께 더 나이 들어 정신이 흐려질 것을 염려해서이다.

소설 집필의 세 가지 관점

첫째, 실화를 소재로 하더라도 사실을 기록하는 보고서가 아닌 진실을 탐구하는 묵시록에 가까운 '다큐 소설'을 표방한다. 저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작가,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의 고백이 이해된다.

둘째, 지금껏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써보자는 관점이다. 80년 5월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최대 피해자였던 평범한 시민들을 한 분 한 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다.

요리사, 용접공, 구두닦이, 가구공, 농사꾼, 수위, 재수생, 여공... 등등 실제 소설에서는 수많은 직업과 실명이 등장한다. 나 또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옮겨 적으며 읽었다. 실명과 행적이 등장한 인물과 성씨만 나온 이들의 합이 100명이 넘는다.

셋째, 두 번째에서 말한 인물들이 계엄당국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폭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을 찾지 못해 고달픈 사람들이었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들이 왜 울분을 토했고 계엄군과 맞서 싸웠는지 '따뜻한 눈물'을 얘기하고 싶었다. 더불어 끝내 총을 들지 못하고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하는 자의 고통도 같은 무게로 쓰고자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이가 <<광주 아리랑>>을 통해서 80년 5월의 광주를 실상 그대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광주가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왜 광주였을까? 소설을 읽으며 궁금했던 부분이다. 10.26과 12.12사태를 거치며 대학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즈음, 계엄군의 목표는 왜 하필 광주였을까? 광주가 아닌 내가 살던 도시였다면 나는, 국민학교 앞동산에서 친구들과 놀다 총소리에 놀라 뛰어가다 떨어뜨린 신발 한 짝 때문에 세 발의 총을 맞고 즉사한 전재수 어린이처럼 되지 않았을까? 물놀이하다 총에 맞아 죽은 중1 방광범, 헌혈하고 적십자 이동차량에서 총에 맞아 죽은 여고생 박금희, 그 외에도 민주화가 뭔지 군부독재가 뭔지 정치 따위 관심도 없는 무고하고 선량한 어린 죽음들을 보며 나는 왜?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왜 광주였을까?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이 왜 시민을 향해 총을 쐈을까? 왜? 왜? 도대체 왜?

문학적 소재로서의 광주, 정치적 이슈로서의 광주

광주 5.18에서 불붙은 민주화운동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80년대 이후 우리 문학에서 다뤄온 가장 뜨거운 주제이자 소재 중 하나였고 그로 인해 우릴 대로 우려낸 곰탕처럼 맛과 색이 흐려지는 중이었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동시대를 겪은 작가들이 쏟아낸 많은 작품들 속에서 저마다 하고픈 얘기를 하긴 했으나 그 작품들이 문단의 평가나 평론가들의 호불호를 떠나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나 또한 여러 권의 소설 속에서 양념처럼 만난 광주와 민주화 운동이 혼재해 있어 정확한 실상을 잘 모르면서도 그저 막연히 우리 역사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문학과 문학 이외의 영역에서도 '광주'는 다양하게 소비되며 조금씩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진실을 밝히려는 몸짓들만큼이나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려는 노력들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진실과 시대의 아픔을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과 결부하여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그릇된 정보를 퍼트리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참 많다는 것도 책을 읽으며 책 이외의 자료들을 접하며 알게 되었다.

40년이다.

40년이 되었음에도 책임도 논란도 마무리되지 않고 해마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소란과 이슈는 현재진행형이다.

정찬주의 광주 아리랑

<<광주 아리랑>>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14일간을 다룬 소설이다.

전남대 학생과장 서명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은 14일간의 광주를 날짜순으로, 무작위의 인물들과 그 인물의 현장을 따라가며 장면의 맥락 구성없이 서술하고 있다. 14일간의 이야기에 축을 이루는 주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총 맞아 죽는 장면만 등장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는 그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 모두를 <<광주아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다방 주방장, 전남대 수위, 목사, 스님, 중학생, 고등학생, 넝마주이, 날품팔이, 미장공... 그리고 이름 없이 그들을 도왔던 가슴 따뜻한 광주 시민들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모든 현장에 그들과 함께 한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은 날마다 거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졌다. 민주화를 위한 평화집회 때는 학생들이 열망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는 시민들이 공포의 아리랑을 불렀다. 또 공수부대와 총격전을 치를 때는 시민군들이 분노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총에 시민들이 희생당했을 때는 부모 형제들이 통곡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런가 하면 공수부대를 물리쳤을 때는 시민 모두가 감격의 아리랑을 불렀고, 도청을 탈환했을 때는 해방의 아리랑을 불렀으며, 계엄군이 다시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탄식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들은 도청 광장에서 다시 모여 부활의 아리랑을 부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광주 아리랑. p268


부디, 공포와 분노 열망과 감격 그 모든 것을 넘어 이제는 희망과 기쁨의 아리랑이 불리는 날이 오기를, 좀 더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