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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문예마당 / 1993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선언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선언을 한 후에는 실행이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언은 무의미해진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선언 뒤에 혜원, 경혜, 영선은 제각각의 행동을 했다. 아니 결정을 했다.
혜원이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이혼을 한 것. 경혜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의 풍요로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대신, 남편의 허물을 못본척 하는 행위. 영선이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증오대신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실행을 하는 행위. 이 세명의 여성들은 제각각의 행동으로 선언을 의미있게 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에게 선언을 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남성' 즉 '남편'의 행위라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진다. 여성의 적이 남성이라고 생각을 하면 전선은 단순해지고, 손쉬운 해결책이 보이는 것 같다. 남성은 여성의 눈 앞에 바로 앉아있고, 여성이 못누리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면 타도 대상으로 아주 손쉽게 여성의 운동은 해답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남성을 타도한 후에는 뭘 어쩌자는 이야기일까. 여성운동이 남성에 대한 반발심, 남성 기득권의 쟁탈을 부르짖는 것은 아닐진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나타나는 뒤틀린 부부관계는 남성들에게 많은 혐의가 지어져 있다. 그렇다면 남성 아니 남편에 대해 여성이 할 수 있는 각각의 대응을 외치자는 것인지. 아니면 샘플링화된 여성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자만심인지.
난 여성운동에 있어 남성을 적이 아닌 동지로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운동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정치투쟁처럼 이뤄야 하지 않을까한다. 그렇다면 남성들도 여성의 동지가 될 수 있고, 여성은 소외된 인권과 기득권을 남성과 함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언 뒤에 나온 행위, 아니 선언을 하기까지의 전선 구축이 너무 남녀의 구분에 의해 나온것이 아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