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기전에 한번은 마라톤에 나가 봐야지 생각했다.
새해 시작될 때쯤에는 남편과 같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축마라톤에 같이 나가보자고 약속 했는데
남편은 달리기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도중에 런닝머신 걷는 것으로 바꾸었다.
달리기는 각자 자기 속도에 맞추어서 달려야 하므로 혼자 달리는 게 맞긴 하다.
집에서 공원을 거쳐 한강변을 달리다 집으로 오는 거리는 대략 6키로 정도 된다. 천천히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므로 시간은 대략 오십분정도 소요되고, 때로는 예쁜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고 더 지체 되기도 하다.
제작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삼분도 채 달리지 못했다. 고교시절 체육시간에 달리기 한 것 빼곤 뛴 적이 없으니 못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급한일이 있어 어쩌다가 뛰어가면 가슴이 아프고 숨은 헐떡이고 다리는 뻐근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뛰다가 힘들면 걸었다. 걷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달리기를 했다.
대략 한시간동안 그렇게 뛰다 걷다 하면서 매일 매일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처음 몇일은 근육통이 생겨 걸을 때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팠다.
아픈 것을 무시하고 운동을 계속 하니 다리의 아픈 것이 사라졌다.
쉬지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 나갔고 힘들 때마다 책에서 읽었던 몇가지 구절들을 생각했다.
<천천히 달리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이건 김연수가 어느 산문집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 되도록 천천히 오래 달리기를 하려고 했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들은 날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구절도 그 산문집에 인용된 말이다. 달릴때마다 이 구절이 주문처럼 머릿속에 떠돌았다.
인간은 애초부터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는 구절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걷는 것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걷는 것과는 별도로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진화되었는데 그렇게 오래 달릴 수 있는 생물은 인간뿐이라고 했다.
치타나 다른 야생동물들은 빠르게 달릴 수는 있지만 오래 달릴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심장이 앞다리와 밀접히 연결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다리의 움직임과 심장근육이 밀접히 연결되어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며 뛰지만 쉽게 지쳐 오래 달리지 못한다.
인간은 심장과 다리와의 거리가 멀어 심장의 박동과는 별도로 천천히 오래 달릴 수 있다.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빨리 달리는 동물을 인간이 끈질기게 뒤쫒아가 사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쨋든 처음으로 10키로 마라톤에 나가 보았다.
6키로를 사십오분에 뛴다고 생각하면 10키로면 한시간 십오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고,
일단 한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잠을 충분히 못잔 것 말고는 몸의 컨디션은 좋았다.
사람들은 꽤 많았고 주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가끔 나와 비슷한 연령대가 보이기도 했고, 아주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도 나시와 반바지 차림으로 준비운동을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스피드를 내며 순조롭게 뛰었지만 나는 곧 지치고 말았다. 호주머니에 넣은 스마트 폰이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팔에 두른 토시가 갑갑하여 뛰면서 다 벗어버렸다. 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숨이 찼다. 좀 더 천천히 달려야 했는데 속도 조절을 못해서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래서 언제 이 괴로움이 끝이날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멀리 5키로라는 표말이 보였다. 그 표말은 나를 무척 낙담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오키로밖에 못 왔단 말이야? 나는 무척 지쳤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여름 잠바를 입은 여자가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뛰고 있었다. 오키로 넘자 테이블 위에 물을 준비해 마실 수 있게 해 주었다. 물을 마시자 좀 기운이 났고 속도를 조금 줄이며 계속 뛰었다. 그러자 주로 남자들이 나를 앞질렀고 나는 계속 뒤에 쳐졌다. 선두와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졌고..꽤 많은 사람들에게 추월 당했다. 이러다가 내가 꼴찌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기운을 내서 속도를 내었다.
몇몇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었으나 나는 쉽게 지쳤고 속도를 줄이자 다시 추월 당했다.
코너를 돌자 길건너 유턴하여 뛰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 거리는 상당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벌써 결승점을 향해 뛰고 있는데 이제 겨우 8키로 지점이라니.. 하는 생각을 했다.
속도를 내고 싶었으나 마음뿐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고 아마도 나는 계속 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유턴을 하고 돌자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거리는 선두와의 거리보다 더 긴 것 같았고 뛰기를 포기한 듯 걷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중간이상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 괴로움도 곧 끝이 날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보였고 결승점안으로 들어가자 괴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번도 쉬지않고 완주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곧이어 핸드폰의 문자로 내 기록을 알려 주었다. 56분 32초였다.
기대보다 좋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하찮은 기록이고 계속 나이를 먹어갈 테니까 이 기록이 내 최고의 기록일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좀 우울해졌다. 난 힘들었는데 이렇게 하찮다니..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단지 달리기 뿐 아니라 다른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힘들게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하찮고 보잘것 없는.. 타고난 재능이 있고 게다가 노력도 열심히 기울이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점점 나이들고 내 능력은 쇠퇴해갈 것이다 하는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내가 얼마만큼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단지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뛰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달릴때마다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아주 지치고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뛰고 있었던 그 순간을...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천천히 달리고 있었던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좀 더 속도를 올리게 되었고 한계단 위로 올라간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다음번에는 좀 더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