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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지났다. 작년에 동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날로부터.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 처음 풀코스를 완주해보는 것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도중에  완주하지 못하고, 포기할까봐.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더 이상 뛸 수 없는 상태가 된다거나, 체력이 바닥나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남편과 같이 마라톤 풀코스 신청을 해놓고, 지인에게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 했더니 그 분의 아는 형님이 마라톤 완주를 자랑한지 이틀만에 사망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분은 정말 운이 없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남편과 나는 생각했다. 
갑자기 사망하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고 그 사람이 그 시간에 마라톤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책상에 앉아 있은 채 죽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죽을 수 있는데.. 달리다가 죽는다고 뭐가 이상한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마라톤을 하다가 죽는 경우란 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야, 하고 남편과 나는 서로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42.195키로를 젊지도 않은 나이에 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터였다. 천천히 무리를 하지 않고, 뛴다면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거라고, 한번 해볼만할 거라는 막연히 생각했다.

끝까지 뛸 수 있을까? 도중에 뒤쳐져서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만약 회수차에 실려서 돌아오게 된다면 얼마나 쪽팔릴까? 하는 생각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 머리속에 번갈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뛰어보면 알 수 있겠지. 도중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도전을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거야.
한번 해보고 싶었잖아. 온 몸에 땀을 뒤집어 쓴채, 헐떡 거리면서,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고 있는 것에 대한 달콤한 환상은 그걸 실현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은 꽤 쌀쌀했고, 출발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마라톤 기록이 좋은 사람들은 앞부분에서 먼저 출발했고, 우리처럼 초짜인 사람들은 나중에 뒤에서 출발하였다. 출발전에 길가에 던져 놓은 겉옷가지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길가에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은 차량이 통제되었고, 길가 상점들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들이 닫혀있었다. 중간에 응원팀들이 춤을 추는 퍼모먼스를 펼치기도 했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앞뒤로 걸리적 거릴 정도였다.
처음에 남편과 나는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속도를 맞추어 뛰었다.
뛰기전에 남편이 한쪽 종아리가 뭉쳤다면서 맛사지를 한 것 외에 컨디션은 좋았고, 달리기는 순조로왔다.
28키로쯤 뛰었을 때, 남편이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고, 나하고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나도 힘이 부쳐 남편에게 맞춰 속도를 조절할 여유가 없었다. 내 속도에 맞춰 그냥 달릴 뿐이었다. 35키로쯤 되었을 때, 나는 화장실을 다녀와도 계속 요의를 느꼈고, 물을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몸 속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과 몸 속에서 무언가가 다 빠져나가 텅빈상태가 되었다.
더이상 뛸 수 없었고,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긴 듯했다. 바닥에 새겨진 숫자, 37.5, 38가 보였고, 500미터가 아주 길게 여겨졌다.
주위에서 응원나온 사람들이 조금만 더 힘내세요!! 하고 응원해주었다. 다행히 회수차(뒤떨어진 사람들을 태워 싣고 가는)에 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했고, 나는 걷다가 뛰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
골인 지점에 거의 다 다달았을 때, 정말 우연히 남편을 다시 만났다.
남편을 본 나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이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남편의 팔에 의지하여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골인 지점이 다가오자  남편은 나를 버려두고 혼자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결승점으로의 전력질주를 남편은 해보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나도 드디어, 비틀거리며 결승점에 들어섰다. 남편이 내게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 겨우, 겨우 풀코스를 완주하고나서, 한동안 달리지를 못했다.
죽지않은 건 행운이었어 하는 생각때문에, 한동안 마라톤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다시 하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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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마라톤을 신청한 이유는 더 나이가 들어 뼈가 약해지기 전에 한번은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설사 도중에 포기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도전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의미가 있겠지 하는 것과

무엇이든 할까말까 망설일 때는 일단 하고 보는 것이 후외가 없을거라는 평소의 생각이 한몫했다.


신청을 해 놓고도 걱정이 많았다. 크게 걱정했던 것은 두가지이다.

2시간 30분안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허리의 통증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하는 것.


그외 작은 걱정들이 있긴 했다.

새로산 신발 때문에 발이 불편할까 하는 것, 앞사람과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서 도중에 길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있었다.

진작에 신발을 샀어야 했는데 미루다보니 일주일 전에야 사게 되었다. (그전에 신던 것은 일년밖에 되지 않은 것인데도 앞부분이 찢어져서 작은 돌맹이들이 들어가곤 했다.)

따라온다는 남편도 걱정이 되어서 연습을 안하고도 뛸 수 있어? 하고 몇번 물어보았는데

남편의 유일한 걱정은 남자들은 한발로 뛰어야 하는 규정이 혹시라도 있을까봐 그게 걱정되지 다른 것은 걱정되지 않는다고 농담만 했다.


10월 9일 아침은 제법 쌀쌀 했다.

서울광장에 도착해서 겉옷을 보관소에 맡기려니 드러난 맨살에 오돌도돌 소름이 돋았다.

7시 10분에 도착해서 거의 한시간동안을 준비운동을 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뛰어본 최대의 거리는 16키로 남짓이었다. 그래서 21키로쯤 되는 구간을 뛴다는 것에 대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치게 될지, 다리의 근육은 얼마나 뻣뻣해질지에 대해 알 수 없었으므로 처음부터 속도를 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길게 가야하므로 힘을 비축해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에 천천히 뛰었다.

서울광장에서 북악산을 보면서 차량이 통제된 차도를 뛰었고, 곧 한강변에 접어 들었다.

온도가 적당해서 뛰기에 좋은 날씨였지만 그늘이 없는 곳에는 가을 햇살이 따가왔다.

한참 뛰다보니 5키로라는 푯말이 보였다. 벌써 사분의 일을 왔군 하는 여유있는 마음이 되었다.

처음 10키로 마라톤을 달릴 때는 이제 겨우 5키로밖에 안왔단 말이야? 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느낌도 달랐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갔고, 그런 일들은 계속되었다. 

저렇게 속도를 내다가는 나중에 지쳐 쳐지게 될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젊고 경험도 많은 러너였던 것이다.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추월 당했으므로 거의 꼴찌에 있겠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무리에서 너무 뒤쳐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그런데 15키로 구간쯤에서 코너를 돌고 돌아올 때 보니 앞서간 사람들과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에 오는 사람들도 모두들 자기만의 속도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천천히 가든 빨리가든 결국 목표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 그 과정을 즐기자 하고 생각했다.


막바지에 이를 수록 예상했던 대로 허리의 통증이 심해졌고, 발이 아팠다. 신기하게 체력이 딸리거나 고갈되는 느낌은 없었다.

단지 뛸수록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막바지에 속도를 내자는 처음의 계획은 전혀 실행시킬 수가 없었다.

걷지 않고 끝까지 뛸 것. 겨우 21키로인데. 하는 생각만 했다.

무사히 완주를 했고, 완주했다는 사실이 아주 기뻤다. 처음 10키로 마라톤을 달릴 때보다 더 힘들지는 않았다.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서 달렸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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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코트 1

 

그 외투는 파란 색이다. 

언니가 산 옷인데 대전에 사는 동생에게 입으라고 주었다. 동생이 한번 입어보고 맘에 든다며 찜했는데 내가 보아도 예뻤다.

동생은 좋은 외투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거의 새것인 고급스런 파란 외투였다.
언니는 미적인 감각이 좋아서 언니가 산 옷들은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언니는 보통 화려한 옷을 좋아하는데 그 외투는 단색에 심플해보이는 스타일이다.

그것이 언니 눈에는 밋밋해 보였는지 동생에게 입으라고 주었다.


동생이 그 옷을 입고 출근했는데, 누군가가 어디서 빌려 입었느냐고 물어보더란다.

동생이 키가 작고 팔도 짧아서 그 옷이 커 보이기는 했다. 그래서 그 옷을 추석때 가져와 내게 입어보라고 하였다.

내가 입어보니 폼과 기장이 딱 맞았고 가볍고 따듯했다. 그러지 않아도 겨울 외투를 하나 장만해야 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거 주인은 따로 있네.. 동생이 아쉬워 하며 내게 건네주었다.

올 겨울은 이 외투와 겨울 파카로 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횡재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옷사는 걸 아주 힘든 노동으로 생각하는 내게 그리 알맞는 옷을 사기도 힘들 것 같아서..


그리고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는데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어머니는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몹시 추워하신다. 속에서 냉기가 올라오니 내가 정상이 아니잖아 하고 말씀하신다.

정말 십일월 초인데도 모자에 목도리에 파카를 입으시고도 추워서 벌벌 떠셨다.

급하게 우리집에 오시느라고 마땅히 입으실 옷이 없으셨다.

나는 옷장을 뒤졌는데 그 옷이 눈에 딱 들어왔다. 어머니가 입어보셨는데 소매가 긴 것 외에는 잘 맞았다.

늘 어두운 색만 입으시다가 그 파란 색 외투를 입으시니 십년은 더 젊어 보이셨다.

어머니는 옷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소매만 줄이면 되겠어요. 하고 말씀드리니

잠깐 동안 소매 걷고 입다가 도로 줄테니 너 입어. 하고 말씀하신다.

 잠깐 빌려 드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에라 다른 옷 줄이는 김에 줄이자 하고 수선집에 맡겼다.

어머니가 소매가 맞아서 좋다고 하셨다. 입술을 곱게 칠하시고 모자를 챙겨 쓰시니 잘 어울리셨다.

이쁘세요하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칠십이 훨씬 넘으셨는데도 예쁘시다는 소리가 듣기 좋으신다 보다.

 어머니는 그렇게 입으시고 노래교실에 가셨다.


파란코트 2


어머니가 이번에 오실때 다른 오래된 옷을 입고 오셨다.

어머니, 저번에 그 파란 외투.. 요즘처럼 덜 추울때 입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말씀 드렸더니

그거.. 집에 가서 나중에 보니 그 옷이 큰애 옷장에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큰애보고 그옷 입어봤니? 하고 물어보았더니 입어봤어요. 애들이 예쁘다고 하네요.. 하길래

도로 달라하기도 뭐하고 너 마음에 들면 입어라 했지.. 하신다.


형수님은 참 이해할 수가 없네. 왜 어머니 드린 옷을 꺼내 입을 수가 있지? 남편이 말했다.

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 형님이 그렇게 하셨을 것 같지는 않고.. 형님이 옷을 정리하다가 어머니 이 코트 예쁘네요 하니까 어머니가 맘이 약해져서는 ..

너 맘에 들면 입어라 하고 말씀 하셨을거야. 어머님 성격엔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형님은 내가 안 입는 옷 드린 줄 아시고 나라도 입자 하고 가져 가셨겠지..

어머니는 우리한테 미안하니까 형님이 그냥 가져가서 입어 봤다고 말씀하시는 거고..

어쨋든 누가 입든 잘 입으면 되지. 근데 형님이 그 옷을 잘 입을까?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너가 바보지.. 남편이 말했다.


그래서 그 파란 외투는 언니가 사서 동생을 거쳐 내게 왔다가... 어머니를 통해 결국 형님에게로 갔다.

코트주인은 따로 있는 듯.

그나저나 겨울 코트를 장만하긴 해야 하는데..ㅠㅠ 올해도 그냥 지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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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기전에 한번은 마라톤에 나가 봐야지 생각했다.

새해 시작될 때쯤에는 남편과 같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축마라톤에 같이 나가보자고 약속 했는데

남편은 달리기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도중에 런닝머신 걷는 것으로 바꾸었다. 

달리기는 각자 자기 속도에 맞추어서 달려야 하므로 혼자 달리는 게 맞긴 하다.

집에서 공원을 거쳐 한강변을 달리다 집으로 오는 거리는 대략 6키로 정도 된다.  천천히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므로 시간은 대략 오십분정도 소요되고, 때로는 예쁜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고 더 지체 되기도 하다.


제작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삼분도 채 달리지 못했다. 고교시절 체육시간에 달리기 한 것 빼곤 뛴 적이 없으니 못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급한일이 있어 어쩌다가 뛰어가면 가슴이 아프고 숨은 헐떡이고 다리는 뻐근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뛰다가 힘들면 걸었다. 걷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달리기를 했다.

대략 한시간동안 그렇게 뛰다 걷다 하면서 매일 매일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처음 몇일은 근육통이 생겨 걸을 때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팠다.

아픈 것을 무시하고 운동을 계속 하니 다리의 아픈 것이 사라졌다.

쉬지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 나갔고 힘들 때마다 책에서 읽었던 몇가지 구절들을 생각했다.


<천천히 달리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이건 김연수가 어느 산문집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 되도록 천천히 오래 달리기를 하려고 했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들은 날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구절도 그 산문집에 인용된 말이다. 달릴때마다 이 구절이 주문처럼 머릿속에 떠돌았다.

인간은 애초부터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는 구절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걷는 것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걷는 것과는 별도로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진화되었는데 그렇게 오래 달릴 수 있는 생물은 인간뿐이라고 했다.

치타나 다른 야생동물들은  빠르게 달릴 수는 있지만 오래 달릴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심장이 앞다리와 밀접히 연결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다리의 움직임과 심장근육이 밀접히 연결되어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며 뛰지만 쉽게 지쳐 오래 달리지 못한다.

인간은 심장과 다리와의 거리가 멀어 심장의 박동과는 별도로 천천히 오래 달릴 수 있다.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빨리 달리는 동물을 인간이 끈질기게 뒤쫒아가 사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쨋든 처음으로 10키로 마라톤에 나가 보았다.

6키로를 사십오분에 뛴다고 생각하면 10키로면 한시간 십오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고,

일단 한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잠을 충분히 못잔 것 말고는 몸의 컨디션은 좋았다.

사람들은 꽤 많았고 주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가끔 나와 비슷한 연령대가 보이기도 했고, 아주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도 나시와 반바지 차림으로 준비운동을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스피드를 내며 순조롭게 뛰었지만 나는 곧 지치고 말았다. 호주머니에 넣은 스마트 폰이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팔에 두른 토시가 갑갑하여 뛰면서 다 벗어버렸다. 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숨이 찼다.  좀 더 천천히 달려야 했는데 속도 조절을 못해서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래서 언제 이 괴로움이 끝이날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멀리 5키로라는 표말이 보였다. 그 표말은 나를 무척 낙담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오키로밖에 못 왔단 말이야? 나는 무척 지쳤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여름 잠바를 입은 여자가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뛰고 있었다. 오키로 넘자 테이블 위에 물을 준비해 마실 수 있게 해 주었다. 물을 마시자 좀 기운이 났고 속도를 조금 줄이며 계속 뛰었다. 그러자 주로 남자들이 나를 앞질렀고 나는 계속 뒤에 쳐졌다. 선두와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졌고..꽤 많은 사람들에게 추월 당했다. 이러다가 내가 꼴찌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기운을 내서 속도를 내었다.

몇몇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었으나 나는 쉽게 지쳤고 속도를 줄이자 다시 추월 당했다.

코너를  돌자 길건너 유턴하여  뛰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 거리는 상당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벌써 결승점을 향해 뛰고 있는데 이제 겨우 8키로 지점이라니.. 하는 생각을 했다.

속도를 내고 싶었으나 마음뿐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고 아마도 나는 계속 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유턴을 하고 돌자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거리는 선두와의 거리보다 더 긴 것 같았고 뛰기를 포기한 듯 걷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중간이상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 괴로움도 곧 끝이 날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보였고 결승점안으로 들어가자 괴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번도 쉬지않고 완주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곧이어 핸드폰의 문자로 내 기록을 알려 주었다. 56분 32초였다.


기대보다 좋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하찮은 기록이고 계속 나이를 먹어갈 테니까 이 기록이 내 최고의 기록일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좀 우울해졌다. 난 힘들었는데 이렇게 하찮다니..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단지 달리기 뿐 아니라 다른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힘들게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하찮고 보잘것 없는.. 타고난 재능이 있고 게다가 노력도 열심히 기울이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점점 나이들고 내 능력은 쇠퇴해갈 것이다 하는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내가 얼마만큼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단지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뛰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달릴때마다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아주 지치고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뛰고 있었던 그 순간을...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천천히 달리고 있었던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좀 더 속도를 올리게 되었고 한계단 위로 올라간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다음번에는 좀 더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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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보기전 무슨 영화를 볼까하고 검색하던 중 두개를 골랐다.

성난변호사와 마션이라는 영화다. 성난변호사는 이선균이 나오고 마션은 스콧 리들리 감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보는 거니까 마션이 낫겠지? 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마션? 어떤 내용인데? "

"화성에 남겨졌다가 구출되는 영화래..  우주에서 조난 당했다가 귀환하는 영화중 그래비티는 어머니의 귀환이고, 인터스텔라가 아버지의 귀환이라면 마션은 아들의 귀환이라고 누가 평을 해 놓았네. 그래비티는 생각나?"

남편은 영화를 같이 보고도 안보았다고 우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는 안보았다고.. 나보고 누구랑 보았느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비티? 뭐지?"

"우주 비행사가 뭐가 고장나서 헤메다가 결국 지구로 돌아오는 이야기잖아.. 바다로 풍덩."

"생각난다. 그 잘생긴 배우.. 누구더라.. 너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

"조지 클루니. 잘 생기긴 했는데.. 좋아하지는 않아.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따로 있는데.. 누군지 알아?"

"그.. 왜.. 바보 역할로도 나오고 사기꾼으로도 나온 적있는.. 난 배우 이름을 못 외워.."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정신지체아로 나왔었지. 하지만 디카프리오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당신 뿐일거야. 하하"

남편은 암기력은 좋은데 영화배우 이름은 못 외운다. 난 기억력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한번 본 영화는 웬만하면 다 기억한다.

확실히 나는 디카프리오를 좋아해서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디카프리오는 물론 잘생기기도 했지만 그보다 연기를 잘해서 좋아한다. <타이타닉>에 나오는 미소년 이미지보다 <디파티드>에 나오는 고뇌와 갈등에 가득찬 이미지가 더 매력적이다.

<디파티드>는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나는 원작보다 이 영화가 더 좋았다.  마피아조직에 잠입한 경찰역에 디카프리오가 나왔다. 겁에 질리고 불안에 흔들리는 눈빛을 잘 연기해냈다.


그외, 조니뎁, 비고몬텐슨 등도 마피아에 잠입하는 경찰역으로 나왔었고,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조니뎁은 <도니브레스코>에서 알파치노와 함께 나왔다.

자기를 친아들처럼 보살펴주는 중간보스 때문에 마피아 조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역으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면서 갈등하던,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조니뎁의 눈빛은 아직도 생각난다.

그 영화를 보고 반해서 비디오가게에서 당시 거금 8000원을 들여 비디오테이프를 아예 사기도 했다. 

비고 몬텐슨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절제된 표정과 몸짓이 멋있었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에 잠입하는 경찰역이다.


<디파티드> <도니브레스코>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잠입 경찰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디파티드에서 마피아 두목은 잔인하고 잠입자는 겁에 질리고 불안에 떠는 모습으로 나온다. 결국 임무를 완수하려는 순간.. 살해당한다.

도니브레스코에서 중간보스는 인간적이다. 부하조직원을 아들처럼 아끼고 정을 준다. 그래서 잠입자는 조직에 동화되고 갈등하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결국 자기의 임무를 완수한다.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잠입자는 그 조직에 깁숙히 파고 들어 그 조직을 장악한다. 결국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런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고.. 실은 그 영화를 보고 배우들을 좋아했던 것이지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면서 갈등하는 모습이.. 인간의 보편적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영화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도니브레스코>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더 공감이 간다.

알파치노와 조니뎁 역시 제일 좋아하는 배우들이고 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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