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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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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래빗이라는 별명을 가진 해리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학창시절에는 잘 나가던 농구선수였는데, 계속 농구선수로 잘 나갔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꿈이 좌절된 후 그에게 남은 것은 구질구질한 현실뿐이다.

알콜 중독자인 아내,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식,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

어느날 해리는 집을 탈출해 집에서 멀리 도망치고자 하는데

막상 집에서 먼 낯선 곳에 가려니 좀 무섭다.

그래서 찌질하게 집 주변에서 얼쩡거리는데...

이소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정말 그럴 듯하게 그려놓았다.

해리는 철도 없고, 책임감도 없지만 왠지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속된 인간을 매력적인 문장으로 그려 놓아 뭐 이런 인간이 있어? 하면서도

계속 읽게 된다.

너무 키가 커서 토끼 같아 보아지 않지만, 하얀 얼굴의 폭, 파란 홍채의 창백함, 입에 담배를 찔러 넣을 때 짧은 코 밑이 신경질적으로 파닥거리는 모습은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어느 정도 설명을 해준다.

래빗은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복도로 나가는 하얀 문에 비친 자신의 흐릿한 노란 그림자를 보며 자신이 덧에 걸렸다고 느낀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는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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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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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 백석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사회관계를 접고 자발적 고립속에 칩거중인 내 친구는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라는 백석의 시구를 인용하며 '혼자있어도 너무 시끄럽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석의 시를 찾아보았고 읽을 때마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이 들긴 했다.

백석의 연인 자야, 대원각, 법정스님에 관한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어 알고는 있었다.

글을 오글거리게 잘 쓰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연수가 백석의 삶을 소재를 했다는 것에서 이 책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백석의 시와, 그의 파란만장한 삶, 그의 연인들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겠지 기대하며 읽었는데

이 소설엔 그런 이야기는 안나왔다. 시인으로서 백석의 존재감이 사라질 즈음, 산수군 협동조합으로 쫒겨날 때의 백석을 담고 있었다. 시가 사회체제의 선전도구가 되길 강요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백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85

그들이 보라는 대로 보고, 말하라는 대로 말하고, 쓰라는 대로 쓰는 것을 하지 않았기에 백석은 산수갑산 어딘가에 양치기로 쫒겨났지만, 그 삶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그 속에서 갓태어난 어린 새끼양이 자라는 것을 감격해서 바라보고, 어린 학생들의 동시도 읽어보며,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김연수의 상상 속에서 백석은 그렇게 살아있었다.

우리말의 어감이 이렇게 고울 수도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해준 단어와 문장들이 많았다. 번역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다.

 

강쇠바람이 독골 깊은 골짜기를 가을빛으로 물들이면, 남쪽으로 트인 하늘로는 진청의 허공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졌다. 그 하늘 아래로 아직은 초록인 무와 배추, 누렇게 영근 조와 귀리, 땅을 뚫고 올라온 불꽃처럼 군데군데 자리잡은 단풍이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호주머니를 털어 마지막 사치를 부리는 탕아처럼 떠나는 계절은 본래 색보다 더 많은 듯이 느껴지게 온 산하를 넘치도록 물들였다. 그러다가 끄무레한 하늘이 며칠 이어지면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바뀌었고 이내 성엣장이 실려오는 강물로 눈발이 죽죽 그어졌다.늦지 않게 가을걷이와 마당질을 끝낸 사람들은 귀틀집 방 벽에 백토 칠을 하고 구들돌을 손질한 뒤, 새 창호지를 문에 발랐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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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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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문장들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머릿말에서 밝혀 놓았듯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듯이 보였다.

인간에게 씌어진 굴레는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성장 소설이다.

필립은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를 지녔고, 어렸을 때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에게 씌워진 굴레는 가혹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가 막상 부닥치고 헤쳐나가야 했던 어려움은 그런 것들 위에 있었다.

다리의 장애는 어린 필립에게 심한 놀림과 따돌림의 원인이 되곤 했지만 필립은 그런 것들을 극복해 내었다.

필립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은 인간 보편의 한계와 맞닿아있다.

신앙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였고,

화가가 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재능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누구보다도 예술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자신의 전부를 걸었지만,

자살해버린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필립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의사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가치도 없는 여인에 대한 불가해한 열정, 또한 인간으로서 갖는 하나의 굴레였다.

물려받은 유산을 다 탕진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필립은 백부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기까지 한다. 인간이란 참 나약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필립이 깨닫는 것은 삶이란 양탄자와 같다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지 않아도 기쁨을 가지고 다양한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

젊어서 읽었을 때는 큰 감명을 받았지만,

나이들어 다시 읽으니 감명보다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

재미있어서 후다닥 읽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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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1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
토마스 만 지음, 박종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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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는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탐색이 뛰어나다.

주인공들은 건실하고, 착실하고 지성을 갖춘 인물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마주친 후 일상을 뒤흔드는 열정에 휩싸인다. 

이 단편집들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갈망, 그것의 좌절이다.

<키 작은 프리데만씨>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평소에 이성적이고 건실한 사람이었음에도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린 후

그 감각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행복에의 의지>에서는 병에 걸려 있는 친구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결혼식을 올린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친구를 살아있도록 지탱해준 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죽음>은 또 어떤가?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딸을 남겨둘 수 없어서 차일피일 죽음을 미뤄오던 중, 죽음이 그것을 알고 딸을 먼저 데려간다.

 

 

요하네스는 모든 것에 즐길 만한 가치가 있고, 그래서 행복한 체험과 불행한 체험을 구분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느낌과 기분을 정말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게 우울하건 명랑하건 가리지 않고 소중하게 키워 나갔다. - P13

자다가 여러 번 깰 뻔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깨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식 없는 상태로 다시 빠져들어 갔다. 그러나 날이 완전히 밝자 눈을 뜨고 고통스러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의 일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잠으로도 고통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 듯했다. - P25

그는 보았다. 갑자기 바뀌는 부인의 표정을. 그녀의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잔인한 비웃음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그녀의 눈이 예전에 두 차례 그랬던 것처럼 섬뜩하게 떨리면서 그를 탐색하듯 꼿꼿이 바라보는 것을. - P31

그녀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아 이렇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금은 그 증오가 자기 자신에게라도 터뜨려야 할 활화산 같은 분노로 바뀌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역겨움으로 치를 떨고 있을까?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싶고,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고, 완전히 없애 버리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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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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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다보면, 역사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이 희극적으로 다가온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감동적일 정도로 정열에 차 있기도 하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 했으나, 출당 당했고, 그후 재입당과 출당을 반복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적극 가담했고, 정부 주도의 숙청으로 모든 관직을 박탈당했다.

그의 저서들은 출판 금지되었고 결국,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때의 체험들은 그의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농담> 속에서는 농담 한마디에 공산당에서 축출되는 집단 광기에 휘둘리는 무력한 한 개인이 나오고,

이 책 <삶은 다른 곳에>서는 혁명에 적극 가담하며, 애인을 고발하는 젊은 시인(詩人)이 나온다.

어머니에 의해 태어나기 전부터 삶을 규정당했던 야로밀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한다. "젊음과 시와 혁명은 하나이자 같은 것이기 때문" 이다.

야로밀, 그 당시의 젊은이들은 현실 너머, 다른 곳의 삶을 꿈꾸었다.

현실은 보잘것 없고, 저급하며, 숨기고 싶은 더러운 팬티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입으라고 날마다 지정해주곤 했던, 여자친구 앞에서 절대 보여줄 수 없었던 그런 것이었다.

야로밀은 현실 너머의 다른 삶을 꿈꾼다.

그것은 그가 쓰는 시 속에서, 그의 글 속에서 발현된다.

그가 쓴 글 속의 주인공 자비에는 꿈 속에서 꿈을 꾸며, 꿈에서 꿈으로 나아간다.

그는 항상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하며, 창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세상은, 창 너머의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가 그 세상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버린다면 저버린 사랑의 모든 가치가 더해져 세상은 그에게 훨씬 더 귀해질 것이다.

"당신은 아름답지만 난 당신을 배신해야 해" 그는 그녀를 뿌리치고 창을 향해 걸어갔다.

141쪽

야로밀도 오빠의 탈출을 묵인한 여자친구를 고발하며, 자기가 꿈꾸는 세상에 가치를 더하려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먼시간으로부터 지금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결국 그 먼 시간으로부터 지금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정치 재판과 박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책들, 합법적인 살인의 시대다. 하지만 그 시대를 기억하는 우리는 증언해야 한다. 그 시기는 공포의 시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정의 시대이기도 했다.

436

그 시대는 시인들에게, 다른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강렬하게 그 자신의 감정들을 체험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개인이라는 것은 얼마나 기만 당하기 쉬운 존재인가?

소설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마음껏 그런 인물을 보여준다. 사람은 결코 자기 삶에서 나올 수가 없다면 소설은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6부에서의 반전과 7부에서의 어이없는 야로밀의 죽음..삶의 아이러니.

<갑자기 끼어들어 설명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좀 거슬린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의 글들은 재미있고, 재치가 있고, 그러면서도 삶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의 전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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