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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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김멜라의 <리듬 난바다>는 제목부터 낯설다. 소설에서 말하는 ‘리듬’이 무엇인지, ‘난바다’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해 단서를 찾으려 할 즈음, 작가는 흡입력 있는 문장과 서사로 독자를 자신이 만든 허구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허구와 현실의 세계는 정확히 연동한다.
한쪽의 실재감을 옅게 하면 다른 쪽의 실재감도 같이 옅어진다. p.87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와 실시간 방송이라는 장치다. 등장인물 둘희는 <더 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와 <배부른 구름>을 반복해서 보고 해석하며 감독에게 빠져든다. 은유와 의도적인 연출로 질문에 다가가는 영화와 달리 실시간 방송 <욕+받이>의 출연자 반응이나 시청자 댓글은 연출자가 통제할 수 없는 날것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 대비 속에서 인물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흔들리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려 하는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읽는 내내 두 영화와 라이브 방송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리듬 난바다>에는 사랑 이야기와 사회적 현실이 함께 존재한다. 로맨스 알레르기가 조금 있는 사람인 나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서사는 폭넓은 결을 갖고 있다. ‘보편적 평등법’과 ‘혐오 표현 금지법’을 오가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어줄테니 죄를 가져오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가져갈 죄가 없다. ‘츠히(Zhi)’를 보는 둘희와 증오를 필요로하는 한기연, 모순적인 인물들이 보게되는 환영과 착시를 독자는 함께 느낀다.

그리고 그 카드에 적힌 문구는 내 삶에 새겨져 눈앞에 착시를 드리웁니다.
삶은 스물네 컷의 환영, 우리 같이 진실한 꿈을 꿔요.
이 나뭇결의 뒤틀림을 없애면 나의 세계도 함께 쪼개져버릴 것 같습니다. p.479

소설의 각 장은 물때라는 순환 단위로 구성된다. 1물부터 13물까지 사건이 이어지지만 일직선이 아니라 교차된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때가 바뀔 때마다 시점이 이동하고 독자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장면과 인물을 연결하게 된다. 13물 이후 다시 1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간이 세대를 거치며 무엇을 쌓고 무엇을 부수는지에 대한 변화의 리듬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의 상형문자 그림과 법원 판결문, 인물들이 주고받은 이메일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인물들의 정체 역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나도 소설 속 대칭어를 따라해본다. 사랑과 이별, 정치와 법, 영화와 라이브, 태풍경보와 돈키호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딸기 내음과 함께 먼바다, 곧 나온바다의 물결 위에서 넘실댄다. 결국 리듬 난바다라는 낯선 조합의 의미는 끝까지 읽고 나서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낯섦이야말로 김멜라 작가가 던지는 가장 진실한 질문이며 독자가 각자의 세계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도록 남겨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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