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한 민족의 역사에 있어 종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민족이 있다바로 유대인이다필자의 지식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시절에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구분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세계에는 전쟁과 수난의 역사를 겪은 민족이 많다그 중에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인폴란드인그리고 한민족일 것이다이들 민족 중에서 유난히 종교와 민족적 특성으로 인해 수난을 받은 민족을 꼽자면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은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셈족인 히브리인들의 후손으로 공식적으로는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이들은 유대교를 믿으며 유대공동체를 이루어 시나고그(교당)에서 유대교식의 예배를 드리며유대율법을 따르며 살아간다.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에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구 동독 및 동유럽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유대인 가족의 슬픈 삶을 지극히 사실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묘사하고 있다.

<1>

신이 주셨고신이 거두어갔다.

<2>

마찬가지로 지금 일어난 일에도그에 맞는 질서가 있었다지난 밤에 집안에 있는 물이란 물은 모두 바깥으로 쏟아버렸듯이왜냐하면 죽음의 천사가 검은 물에 담가 씻을 테니까 거울을 덮고 창문을 열어놓았듯이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았으니까그래야 아기의 영혼이 되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를 대대로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교도인 남편과 결혼하게 된다그리고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잃게 된다그리고 남편은 집을 나가게 되었고그녀는 홀로 남아 매일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지극히 살벌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읽으며 떠올렸던 작품은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고백이었다이 작품은 제 2차 세계 대전 후 패전한 독일에서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삶을 그리고 있다폐허가 된 공간에서 남은 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허무로 가득한 현실임을 작가의 서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저녁이 저물 때에서 예니 에르펜베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마치 부조리극 혹은 1인극의 공간을 빌려 주인공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며 시점과 공간이 이동되고 있으며현실과 환상을 종종 넘나들기도 한다어느 부분이 현실인지 혹은 상상인지 분간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아마도 막간극이라는 소설의 공간에서는 만약 ~했더라면의 가정의 조건 하에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읽으며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프란츠의 교차적 시점을 떠올려보기도 했다영화 프란츠에서 프랑스인 남자주인공이 전쟁에서 전사한 독일군의 편지를 그의 여자 친구에게 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독일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프랑스군인 남자주인공이 오래 머무를 수 없었듯그의 공간인 프랑스에서 독일인인 여자주인공도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편견으로 인하여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예니 에르펜베크의 소설에는 소설적 현실과 소설적 가상 공간이 교대로 나타나 현실에서 보여지는 사실은 지극히 처절하고 비참하지만만약에 현실처럼이 아니고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고백과 같은 소설에서는 전후 독일의 현실이 매우 심각하면서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듯 그려지고 있다그러나 독일도 1989년 이후 통일을 경험하면서 전쟁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 작가들은 전쟁을 경험한 작가들과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이 누구의 책임인 것이며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지극히 철학적이며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그러한 환경에 처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며 실존적인 부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소위 젊은 세대 작가의 특유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영돈(2013)의 독일 신세대 문학 연구에서 그는 예니 에르펜베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동독 출신 젊은 소설가 예니 에르펜베크는 그동안 서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독산 춤사위를 선보이며 댄스홀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자본주의에서는 찾기 힘든 이야기의 무궁한 보고인 사라진 동독을 유머와 풍자를 통해 부활시키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제3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독의 현실을 묘사하는 부분으로써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여겨질 수 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부분을 다시 정독하려고 마음 먹었다. 예니 에르펜베크는 희곡 집필부터 작가생활을 시작하여 그녀의 소설에는 다분히 연극적 요소도 묻어나고 있다.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처음 읽으며, 소재의 특성 상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유대인과 세계 제1~2차 세계대전에 처한 독일 및 동유럽, 러시아의 현실, 그리고 다양한 부분을

아울러 관조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희곡으로 쓰여젔더라면 읽기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작가의 문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서사가 너무 길어서 다가가기 어려운 점도 있었으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