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정진오 지음 / 가지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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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참 넓은 도시다. 인천 사람도 길을 헤맨다는 마성의 부평지하상가, 갯벌과 평야를 품은 강화도, 북한이 지척에 보이는 서해의 섬, 중구 차이나타운과 개항장거리, 남동공단과 주안공단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인력사무소가 즐비한 간석오거리, 외국에 온 듯한 송도의 마천루들과 센트럴파크,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최초의 쫄면 가게, 역세권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한산한 수인선 역사들, 복잡하고 길기로 악명 높은 시내버스 노선, 비린내 자욱한 연안부두와 소래포구 어시장, 화물차가 질주하는 북항, 사시사철 막히는 경인고속도로, 북한이탈주민이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북한음식 식당까지인천은 도시와 농촌, 어촌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참으로 넓고 다양한 색의 지역이다.

 

사실 인천은 내게 애증의 이름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생활해왔지만 인천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전에 인천은 그저 떠나고 싶은 도시일 뿐이었다. ‘마계 인천이라는 표현이 유행했을 때 인천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그 표현에 수긍했듯, 나 역시 그랬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천은 우울한 1호선과 빈번한 사건사고, 최근에는 유충 수돗물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천의 다양함과 그동안 몰랐거나 무심했던 인천에 대해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꽤 나왔던 인천 여행서를 읽을 때마다 실망한 적이 많았다. 인천에 몇 번 와본 것이 전부인 사람이 썼거나, 인천을 관광지로 바라본 책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여행책으로 생각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불친절한 내용에 놀랄지도 모른다. 여행서의 필수처럼 되어버린 흔한 맛집 소개는 물론, 사진도 별로 없거니와 말랑말랑한 문체로 쉽게 쓰여진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천의 역사를 중심으로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풀어놓고 있는 이 책은 여헹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이라는 시리즈에 맞춤하다. 저자인 정진오 기자가 이미 다각도로 인천을 탐사하는 기획기사를 써온 지역지 기자로 이미 내공을 쌓아 왔기에 가능할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한 권 한 권 읽고 찾아서 기록한 우직함이 돋보인다.

 

인천의 과거, 전쟁의 역사, 개항기의 이야기들, 무심코 지나치던 도로명에 숨은 사연, ‘송도(松島)’송도(松都)’의 다른 점, 이야기로만 전해듣던 주안염전, 김구를 비롯해 인천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 호떡과 냉면 같은 인천의 맛, 남북 간 은밀한 물물교류가 이뤄지던 루트였다는 철산리의 뱃길 이야기까지하나의 키워드만으로도 역사와 문화, 인물, 공간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알던 인천은 좀 다른 인천이었던 기분마저 든다. 인천이 처음인 사람도, 인천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새로운 인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인천은 바다에서 보면 해양도시이고, 강화에서는 민족시원의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공단지대에 서면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한 도시다. 개항장과 송도신도시를 잇대어 보면 국제도시 100년의 공간이다. 송도국제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다. 대교 아래 바다에는 물고기만 오고간 게 아니었다. 외세의 침략도, 서구의 온갖 문물도 이 바다를 통해 들어왔고,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도 이곳으로 드나들었다. 인천대교를 지나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에 생각해야 할 게 무척 많다.”

 

당장은 코로나 19로 인천대교를 건널 일이 거의 없지만, 이후에 인천대교를 지나가게 된다면 나는 그때 이 구절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최소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예전처럼 별 생각 없이 인천대교를 지나치지는 못할 테다. 시간이 흘렀을 때, 인천대교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인천은 얼마나 변해 있을지, 그 변화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해진다.

좋은 여행책은 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여행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추천해놓은 인천 인문여행의 9개 코스는 차차 도전해보기로 하고, 조만간 문학산 꼭대기에 올라가 저자의 말대로 정말 평평한지 확인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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