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 암을 지나며 배운 삶과 사랑의 방식
양선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그때 복례씨는,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이 계속되기도 하고 진짜 끝장나기도 하고 그러겠지. 암을 지나며 배운 삶과 사랑에 대해 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신문사 기자가 쓴 암 투병기. 유방암 3기를 진단받고 항암치료부터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겪으며 거쳐온 삶의 굽이굽이가 금방 공감되도록 진솔하게 잘 드러나 있다. 죽음의 가능성을 코앞에 두고 해쳐온 그 시간이 마치 내가 겪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뻐근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들은 모두 죽을 운명이고, 암에 걸려 죽을 확률도 높은 편인 게 현실이지만, 인간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진화해와서 그런지 죽음 같은 확고한 미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 안 죽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 때가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암은 죽을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을 한 방에 강력하게 들이미니 얼마나 무섭고 힘들까.
저자 역시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치며 글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원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계속되는 인생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글 전체에 눈물이 흘러넘치기도 하지만 그 안에 관계와 사랑, 깊은 깨달음도 함께 한다. 저자에게 그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힘이 되어 다행이다, 외로움을 자처하고 남한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암 투병도 남들보다 더 힘들게 겪겠구나,는 생각에 자신의 투병 사실조차도 밝히기 원치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또 자식이나 배우자가 있어도 혼자 투병 과정을 버티는 사람들, 자식이나 배우자가 없어서 혼자 아픈 사람들, 돈 걱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자는 먹을 걸 챙겨주는 어머니와 사랑으로 지지한 배우자와 자식들, 한없이 따뜻하고 현금까지 챙겨주며 강력한 도움을 준 회사 동료들, 오래된 친구들, 심지어 의학적 조언으로 도움을 준 의학전문기자까지 든든한 관계 안에서 고통을 버텼다. 글 끝부분에 그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에필로그로 담겨있는데 제목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 외로움을 가중시킬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받은 사랑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34쪽
아픈 사람 누구에게든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아서 플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는 나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고. 누군가 홀로 아파하고 있다면 어떤 도움이든 될 책이다.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역시 그러한데, 구체적인 유방암 투병기로, 투병 중 실제 필요한 팁들이 꼼꼼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채소 먹기와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가슴 트고 사는 여자들의 은밀한 공감'에 나온 할머니와 '내게 담겨있는 것들을 살피며 마지막 항암을'의 권사님 얘기도 감동이었다. 나만의 루틴으로 나를 돌보기(260쪽)은 아프지 않더라도 해볼 만하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저자는 어떻게든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저자는 스스로도 많이 울었고 그 울음이 전염되기도 했는데 <달러구트 꿈백화점>이야기까지 끌어와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에너지를 주고자 한다. 다른 사람의 투병에 해주는 조언도 진심이 뚝뚝 묻어나 나도 모르게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본인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고마운 마음. 부디 완쾌해서 할머니가 되겠다는 꿈 이루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