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을 먹으며 시를 읽었어요. 뭔가 입에 들어있는 걸 아그작아그작 씹어삼키며 시를 읽는 일은 점심먹기에도 시를 읽는 일에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어요. 가끔은 씹는 일을 멈추고 멍하니 시집의 그 많은 휑한 공간들을 쳐다보아야 했지요. 특히 성다영의 시를 읽을 때는요. '욕망 없이 너를 좋아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욕망 없이 너를 좋아할 수 없을까(84쪽)' 묻는 시인은 떠날 수 없는 손의 무력감에 대해 저속한 손이라고 말해요. 갑자기 밥 퍼먹는 데 열중한 나의 손을 바라봐요. 저속해요. 식욕이 떨어져요. '희생 없는 세계(85쪽)' 아름다울 거 같은데 '삶은 쓸모없는 것으로 단단해져가고 살아가기보다 소멸하기'를 생각해야 해요. 밥맛이 줄어들고 식욕이 없어져요. '점심산책(87쪽)'이란 시에선 '인간은 혼자서 혼자가 될 수 없고 음식에는 죽음과 고통이 있다'고 해요. 음...성다영의 시는 그만 읽어야 겠어요. 안미옥의 시에선 좀 달라져요. 거긴 '알찬 하루를 보내려는 사람을 위한 비유의 메뉴판(95쪽)'이 있어요. '너의 앞날은 두유크림파스타처럼 뿌옇고 고소하다'를 시켜요. 제일 비싼 메뉴에요. '너의 오후는 아보카도롤처럼 속이 편하다'를 시키고 싶지만 어차피 뿌연 앞날 고소하면 좋을 거 같아요. 디저트는 '에그타르트처럼 푹 빠지기 쉬운 타임슬립'이에요. '구즈마니아를 검색하고는 식물을 사러 상점에 가느라 시를 다 까먹어버리면 좋겠다(103쪽)'고 쓴 시 구절 때문에 나도 따라서 구즈마니아를 검색해요. 그리고 600개의 알록달록한 묘지가 있다는 루마니아의 한 마을도 같이 검색해요. 비문에 웃긴 말이 써 있대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진도 찾았어요. 루마니아 어를 알 수 없으니 어떤 웃긴 말일지 너무 궁금해져요. 루마니아의 사푼차 마을이래요. 묘지 뒷 편에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그림으로 조각해 놓았대요. 그건 그렇고 그 묘지 때문에 몇몇 친구들과 약속했던 일이 떠올라요. 제가 바보같은 표정을 정말 잘 짓거든요. 친구들이 보기만 해도 웃음을 빵 터트려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 하루종일 웃겨줘요. 그래서 낄낄거리다 약속했어요. 임종을 맞을 때 꼭 찾아와서 웃겨주기로. 귀가 들릴까. 섬망이 와서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은 되지만 얼굴에 웃음기가 남은 채로 죽어갈 수 있으면 생각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상황이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약속은 했어요. 밥을 다 먹어갈 무렵에 오은 시를 읽어요. 제목은 '그'. '그의 이름은 김성진이다...그는 이룰 성에 참 진을 쓴다. 아마도 성진의 대부분은 참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성진이다 참을 이뤄야 하는데 골목 어귀에서 점점 진실과 멀어지고 있었다 모임의 이름 또한 김성진이다 김이 새고 성이 나고 진이 빠지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고 있었다(113쪽)' 남의 우정에 금간 이야기가 그냥 막연히 좋아서 가까스로 혼자 먹는 점심을 끝내요. 아...혼자 점심 먹을 땐 시를 읽지 말아야 겠다, 고 마음 먹어요. 시는 시를 읽을 만한 시간에 읽어야 겠어요. 시를 떠올리는 건 괜찮을 거 같아요. 혼자 점심 먹으며 말이에요. 어차피 시는 시니까요. 시는 모두를 위한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