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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아파트 가진 사람들이 뿜어대는 돈을 향한 열망이 무서운 나는 1인가구로 살면서 아파트 선망과 더 멀어졌다. 건축을 공부하고 공간을 늘 고민해왔지만 허공으로 높이 올라간 콘크리트 덩어리가 왜 그리 비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는 건 사람들의 욕망이다. 그 욕망이 벌여놓은, 은행과 건설회사, 언론과 재벌까지 가세한 이 거대한 아사리판은 곰곰히 살펴볼 때마다 놀랍다.
정부 정책으로 이들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가? 현 정부에게 부동산 정책 실패했다고들 욕하는 사람 많은데, 어떤 국가정책이 이들의 욕망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 판에 끼어든 욕망의 불길을 어찌하면 가라앉힐 수 있는지. 이 욕망은 자기 갈 길대로 갈 뿐이다. 돈놓고 돈버는 금융자본주의와 공구리산업이 펼쳐놓은, 오로지 더 많은 돈을 추구할 뿐인 이전투구의 판에서 자기 욕망에 미친 개인은 제정신일 수가 없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 우선 자신을 돌로 쳐야 한다.
돈놓고 돈먹는 판에서 제어되지 못한 욕망은 강력한 빈부격차로, 부의 세습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가난은 우리에게 기본으로 깔고 가는 신분이 되었다. 가난은 이제 더이상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 가난에 대한 멸시와 돈을 향한 욕망도 점점 노골적인 폭력이 되고 있다.
예전엔 그래도 불로소득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가진 사회에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돈 선망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돈 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못난 하류 인생 취급하는 게 놀이가 되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이 건물주이고 빌거(빌사에 사는 거지), 임거(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란 말이 어린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문제시된 지 오래다. 그리 많은 집들이 지어졌는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가소유율은 50%대다. 거대 미디어 편집권한을 가진 자들도 강남 아파트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자기 신분 계급에 충실한 기사만 쏟아낸다.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욕망을 거두지 않는다. 조남주의 <서영동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촘촘하게, 한 마당에 구체적으로 펼쳐놓고 보여준다. 그야말로 아파트생활자들의 민낯이며 필독서다. 화나고 욕하고 쯧쯧대다가 심각해진다.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끔찍하다.
아내는 욕심 그만 부리라지만 용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8월 말의 실거래 정보를 보면 지금 내놓은 가격에도 거래가 될 것 같다. 분명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인데 내 것이었던 것 같고 빼앗긴 것 같다. 용근은 박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봄날 아빠'
바로 이 마음.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인데, 내것이었던 것 같고 빼앗긴 것 같은 그 마음. 이런 마음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가져보지도 않은 것 때문에 박탈감을 느껴야 하다니, 잠까지 못자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경고를 여기저기 써 붙이던 경비원만이 미치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여기'를 문제삼지만, 해고당한다.
"이 양반이 왜 이래? 미쳤어? 처음에는 안 그러더니 사람이 왜 이렇게 이상해졌어?"
"여기가 이상하니까요. 너무 이상합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그날로 아버지는 해고당했다. '경고맨'
아파트를 둘러싼 욕망은 지하철 출구 방향에까지 촉수를 뻗어 나가며 종국에는 개인의 자존감과 수치스러움까지 쥐고 흔든다.
창 너머로 노을빛을 머금은 구름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32층 통창 너머의 풍경에 유정의 답답한 마음이 뻥 뚫렸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서영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로열동, 로열층, 그림 같은 노을 앞에 서서 유정은 자꾸만 서러워졌다....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소유주가 된 네가....그 모든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경고맨'
이자영은 대형 로펌 소속 변화사와 결혼해, 은주보다 더 넓은 평형에 살며, 두 아이를 모두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낸, 우아하고 성실하고 경우 바른 엄마가 되었다.... 은주는 케이 엄마에게 혼자 느꼈던 호감마저도 수치스러웠다. '샐리 엄마 은주'
작가 조남주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읽는 나도 힘들고 소름끼쳤는데 쓰는 사람이야 더 했겠지. 작가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몇몇 투기꾼의 이야기도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미치돌아가는 광란의 한 판. 박탈감, 영혼까지 끌어모은 긴박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욕망의 매드릭스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중력으로 모인 우주의 입자들이 바다를 만들고 땅을 만들었을 때부터 소유주같은 건 없었다, 인간에게는 모두 땅이 필요하다, 이런 바보같은 소리나 중얼거려 본다. 난 주위에 편의점도 없는 빌라거지로 살지만 그래도 계속 빌라거지로 살겠다. 얼마짜리 아파트에 살건 우리는 이 아사리 판의 모습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야말로 우리 이야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잼난다.